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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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홍콩]의 중심지률 벗어나 안수에서 수원사이의 국도처럼 뻗어있는 시골길을 50여 리 서북쪽으로 달려가 낙마주의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오르면 널브러진 들녘이 한가롭다. 중국대륙의 모습이 한 눈에 찬다. 기자가 만18개월 동안의「홍콩」생활에서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낀 중공사의를 연재물(「중공은 오똑이인가」)로 정리하면서 문득문득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 산등성이 풍경이었다.
그「초사의 동산」에서 인재나 아주 엇갈리는 두 정경을 보게된다. 서방 관광객들이 아무런 감흥도 없이 기념촬영에나 신명을 내고있는 바로 그 이웃에 중국인들이 넋을 잃고 상념에 젖어드는 모습이다. 중원의 흙 냄새라 한들 다를 바 없으련만 인솔자의 재촉에도 자유중국관광객들의 발길이 쉬이 떨어지길 않는다. 서양사람에겐 하나의 관광명소이지만 중국인들에겐 한이 서린 곳이다.
5백만「홍콩」인구의98%를 차지하는 화교들은 성분에 따라 국경일을 달리 치른다. 대체로 거상들은 중공명절에 오성극기를 내걸고, 달동네의 판자촌이나 빈민가의 서민들은 자유중국 명절에 청천백일기를 내건다. 신문도 중공계·국촌계·중립계가 동존 한다. 백화점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홍콩」은「두 중국」의 선전과 정보전쟁이 치열하다. 서로가 상대방에 불리한 것은 크게 불려 살을 덧붙이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퍼뜨린다. 자신의 하잘 것 없는 밝은 면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기자는 그런「홍콩」에서 경험했던 중공 상을 연재물로 엮으면서 정보 전에 말려들지 앓고 대륙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를 섰다.
그러나 연재를 시작한지 몇 회가 지나지 않은 때에『지나치게 중공의 어두운 면을 과장하여 기사를 쓰고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독자의 의견을 들었다.
중공이「닉슨」의 방중을 전후하여 문호를 열었을 때 서구의 언론은 대부분 경이의 눈으로 대륙의 발전을 찬양했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의 글도 적지 않았다. 이렇듯 극단적인 두개의 중공 상에 늘 접해온 독자들의 반응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느껴졌다.
또 한편 애써 중공 쪽의 자료를 가지고 기사를 쓴다 해도 기자 스스로가 그 현장에서 보고 겪은 사실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적이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기자는「홍콩」생활동안 많은 자료를 접하고 또 듣는 과정에서 그것이 중공의 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실이라고 판단이 들 때 한 줄의 글 또는 하나의 귀동냥이라도 허술히 넘기지 않고 챙긴 결과 중공이 막연하게나마 이런 사회구나 하는 나름대로의 틀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 뒤 안에는 중공자신과「홍콩」좌익언론계의 자료에 크게 도움을 받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진실의 추구는 쉽지 않다. 기자가 자료와 증인으로 엮은 중공의 모습이 범을 그리려다 고양이의 모습조차 비껴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자는 객관성을 치키려고 애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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