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사랑의 전설 얽힌 최고령 용등 나무|월성군 「등나무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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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땅에 닿을듯하다 하늘로 솟고 솟는가하면 이내 흙을 잡을 듯 얽히고 설키며 뻗친 나목의 뒤틀림은 한 폭의 용천도를 보는 것 같다.
경북 월성군 견곡면 오류동 「등나무 마을」-.
노수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을 천년 세세 간직하여 부부간에 금실 좋기로 이름난 동네다.
질펀한 들녘을 질러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동네 수문장인 듯 버티고 선 등나무 (천연기념물 제89호)는 모두 네 그루.
두그루씩 정답게 짝을 지어 뻗어난 가지는 곁에선 팽나무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있다. 땅위로 낮게는 20cm, 높게는 50cm 사이에 꿈틀거리는 등나무는 동서 20m, 남북 50m에 뻗어 그웅좌는 마을을 뒤덮을 기세다.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나무에 얽힌 전설 따라 2천년쯤 되었으리라는게 촌로들의 말씀. 우리 나라 최고령 등나무다.
「등나무골」은 신라때 숲이 울창해 임금이 사냥을 즐기던 곳으로 용림이라고 불렸고 이 마을 등나무도 흔히 용등이라고 부른다.
용등 나무가 주민들에겐 가정의 화목과 자손의 번창을 약속하는 신목. 신혼 부부에겐 백년해로를 지켜주고 다툼 있는 부부에게는 애정의 회복을 가져다준다고 깊이 믿고 있다.
지금도 신혼 초야 금침에 등 꽃잎을 넣어주는게 이 고을 풍습이다.
『시집갈제 등 꽃잎 안 갖고 가머 소박맞는데이.』 최고령자 안선 할머니 (78)는 14세 혼례 때 비단 주머니에 등꽃 말린 것을 넣어 문갑 깊숙이 간직해 4년 전 할아버지가 세상 뜰 때까지 큰 소리 한번 없이 잘 살았다고 자랑이다. 『신랑·각시 인정이 (사이가) 안좋으머 우리 동네로 보내소. 등 나무 잎 삶아서 그 물을 먹으머 당장 좋아진다카더라.』 등나무 옆집 이순임씨 (54)는 두 딸을 곱게 키워 시집보내고 착한 며느리 맞아 걱정 없이 사는게 신목덕이라며 등나무의 신통력을 굳게 믿고 있다.
한낱 늙은 나무이고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누군가 만들어낸 전설이겠지만 옛 이야기의 묵시적 교훈을 이토록 곱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인가 싶어 마을의 심성을 알 것만 같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무렵-.
이 마을 한 농가에 19, 17세된 자매가 살고 있었다. 둘은 이웃에 사는 화랑 청년을 사랑했다. 사모의 정은 두자매가 똑같이 애틋했지만 둘 사이엔 서로가 사랑의 라이벌이란걸 모르고 있었다.
그 어느날 화랑 청년은 백제와의 대회전인 황산벌 싸움터로 출정한다. 그가 말에 오르는 날 비로소 이들은 같은 사나이를 서로 사모했음을 알게 된다.
우애가 두터웠던 자매는 자신이 양보하겠다며 마음을 굳히던 중 뜻밖에 연인의 전사 통보를 받게 되었다. 식음을 전폐한 채 부둥켜안고 울기를 3일. 그리움에 지쳐 기진한 자매는 두 손을 잡은 채 동네 호수에 몸을 던졌다.
얼마 후 그 자리에 두 그루의 등나무가 솟아났다.
그러나 죽었다던 화랑 청년은 적군의 포로가 되어 있었고 전쟁이 끝나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매의 슬픈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도 애절한 마음을 못이겨 연못에 빠져 죽으니 이번에는 그 자리에 팽나무가 자랐다.
등나무로 화한 자매와 팽나무로 세상에 태어난 청년은 현세에서 못 이룬 사랑을 내세에서 이룬 듯 서로 부둥켜안은 형상이 되었고 봄이 되면 팽나무잎은 구름처럼 무성해져 더욱 포근히 등나무를 감싸준다.
『꼭 등나무 때문은 아니겠지만 우리 마을엔 이혼한 부부가 한 쌍도 없어요. 남녀의 진실한 사람이 무엇인지를 나무 전설을 통해 어려서부터 귀에 익힌 때문이겠지요.』
이장 정연경씨 (44)는 등나무의 신통력설 때문에 수난도 많다고 한다. 음력 3월 등꽃이 망울을 터뜨리고 향기가 온 마을에 스며들 때면 등나무의 전설을 듣고 찾아온 상춘객들이 앞을 다투어 꽃과 나무 잎을 따 가는 바람에 등나무가 몸살이 날 지경이란다. 아예 나무줄기를 잘라가거나 껍질을 벗겨 가는 사람도 있다.
『작년 봄에는 4년째 남편 외도로 속을 썩이고 있다는 대구의 어느 부인이 자가용까지 타고와 나무껍질을 벗겨갔습니다.』 이 마을 김태임씨 (50)는 사연이 하도 딱해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등나무는 지난해 11월 응급 치료를 받았다. 밑둥치와 동쪽으로 굽은 줄기 곳곳의 고사한 부분을 긁어내고 상처가 큰 곳은 「시멘트」로 막았고 작은 곳은 방부제를 발라 주었다. 군에서 관리인 한명을 두어 1주일에 한번 정도씩 둘러보고 가지만 올 봄부터는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상춘객에 의한 수난을 막기로 했다.
81가구 4백40명 주민들의 주업은 논농사. 논농사 못지 않게 인도 사과와 홍옥 등 사과 생산으로 연간 3백5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사과뿐만 아니라 살구 대추도 제법 소출이 되는데 이 동네에서 열매 잘되는게 역시 등나무 사랑 덕분으로 풀이한다.
혼자 다니기 무서울 만큼 숲이 울창했다는 등나무 주변이 까까중머리가 된 건 도벌 때문. 이장 정씨는 『몽땅 베어가면서도 등나무에 손을 못댄 건 역시 톱을 대는 순간 천둥번개가 쳤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맞는 것 같다』며 보호책 주변의 녹지대초성이 주민들의 금년 목표라고 했다. 【월성=엄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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