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즐기고 1년에 한번은 단식|서양화 오지호 화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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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내 뜻대로 산다』
눈 덮인 무등산(전남광주)계곡 아늑한 초옥에 오지호 화백(76)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아직도 약간은 장난기가 어린 것 같은 동안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끝없는 정열을 내뿜기 시작했다.
오화백은 미의 원리, 국어정책 .책, 과학기술 등 다양한 자신의 관을 피력하면서 근자의 일상을 말해준다.
『말을 자주 타지. 영산강의 강둑을 마냥 달리는 그 장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오화백이 운동 삼아 승마를 시작한지 어언 50년.
『늙은이 운동으로도 최고야.』말을 타고 찍은 멋진 사진이 창틀 옆에서 웃고 있었다.
흙 냄새가 픗픗한 논길을 박차를 가하며 달릴 때는 새로운 원기가 샘솟는 듯하다고 말한다.
『채소도 내가 갈아먹어. 흔히 말하는 무공해 식품이지.』 그러면서 대둔 앞 1백여 평의 밭을 가리켰다.
그의 또 다른 독특한 면은 몸이 찌뿌듯할 때마다 행하는 단식요법.
30대 때 위궤양으로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단식요법으로 이를 이겨냈다.
『2주일동안 물만 먹고·지낸 적도 있어. 요즘은 1년에 한차레 정도 1주일간 단식을 해요.』 단식은 복잡한 생활의 결과로 생기는 육체의 혼돈을 원상대로 정비해주는 자연요법이 라는 게 오화백의 지론.
지난해도 단식을 끝내고「아프리카」 여행을 했더니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올해는 책을 하나 내겠어. 40년 전에 이미 원고를 써 놓은 것이 있어요.』
미의 의미를 본능적인 측면에서 전개한 『미와 회화의 과학』을 출판하겠다며 의욕을 펼친다.
화가이면서도 한글전용교육에 반대, 자작의 국민학교 교과서를 집필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뒤떨어진 우리의 과학기술도 논한 오화백.
70순이 넘는 오화백이 일본국민학교의 자연교과서를 꺼내놓고 열기를 토할 때는 3평의 공간이 너무 좁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의 자태가 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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