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ARF서 북핵 비판 연설할 때 북·일은 회의장 나가 다른 방서 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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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얀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9~10일)에서 외교전쟁의 승자는 일본과 북한이었다. 예년엔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ARF 의장 성명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올해는 달랐다. 북한과 일본 대표단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됐다. 다자 외교 무대에 처음 데뷔한 이수용 북한 외무상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양자 회담들을 이끌어내며 ARF에서 실리를 챙겼다.

 특히 압권은 10일 ARF 전체회의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앞두고 기시다 외상과 이수용 외무상이 한꺼번에 자리를 뜬 장면이었다. 다섯 번째로 입장을 발표한 이 외무상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16번째 발언자가 발언을 끝내자 자리를 떴다. 기시다 외상도 마찬가지였다. 윤 장관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을 비판하고 드레스덴 선언 등 대북정책을 설명하기 직전이었다. 윤 장관의 발언 순서는 18번째였다. 북·일 두 외교 수장은 회의장을 나서자마자 다른 방으로 들어가 정식 양자 회담을 했다. 북·일 외교장관 회담은 2004년 이후 10년 만이다.

  30분여 지났을까. 이 외무상이 갑자기 밖으로 나오더니 이번엔 복도 건너의 다른 방으로 쑥 들어갔다.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회담한 것이었다. 북·중 회담이 어렵다고 전망한 우리 외교부의 예측을 깬 결과였다. 그 사이 북한 최명남 국제기구 부국장은 깜짝 기자회견을 열어 “핵무기 보유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부득이 내린 결정”이라며 핵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개막 첫날인 9일에는 일본이 가장 분주했다. 일본은 미·일 회담에 이어 오후 한·일 회담을 했다.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담이 다음 날로 미뤄지자 한밤중에 중국과 외교장관 회담을 열었다. 아베 신조 총리 취임(2012년 12월) 후 첫 중·일 간 외교장관 회담이었다.

  북·일, 북·중, 중·일 회담은 ARF 시작 전부터 성사 여부가 주목을 받았다. 하나하나가 한국 외교에 미칠 영향이 커서다. 하지만 외교부 관계자들은 성사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능성이 낮다”거나 “성사되더라도 잠깐 서서 만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막상 9~10일 회담들이 성사되자 이번엔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10일 “길게 (회담을) 한 것 같지는 않고 기존 입장을 서로 밝힌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유지혜·유성운·정원엽 기자, 베이징·도쿄·워싱턴=최형규·김현기·채병건 특파원, 권정연·차준호 대학생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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