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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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런던」에 가면 우선 눈에 띄는 사람이 경찰이다. 삐죽한 「헬미트」를 쓰고, 몽둥이와 호각을 들고 길거리마다 서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호각의 소리. 우리나라의 호각처럼 사나운 소리가 아니다. 긴박감이나 공포감과는 거리가 먼, 어딘지 장난스럽고 기묘하고 경쾌한 소리를 낸다.
그 비슷한 소리가 경찰의 순찰차에서도 난다. 질주하는 일이라고는 없는 것 같다. 예사로 달려가며 장난감 자동차 같은 소리를 낸다. 경적치고는 맥빠지는 소리다.
「파리」엘 가도, 「프랑크푸르트」엘 가도 마찬가지다. 필경 시민을 공연히 긴장시키고 공포감을 갖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일 것이다.
오히려 겁을 주는 것은 미국의 경찰이다. 거의 예외없이 권총을 차고,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타고 있다. 금방 무슨 총격전이라도 벌어지려는 분위기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찰학교의 교본엔 이런 예화가 있다고 한다. 취객이 전봇대에다 소변을 보고 있을 때 경찰은 어떻게 주의를 줄 것인가.
『이 동네 전봇대는 유난히 키가 큽니다. 새벽이면 동네 개들이 요소(요소)비료를 많이 준답니다.』
이렇게 말을 건네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 순사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지만, 직업상 그와같은 「유머」감각은 필요할 것 같다. 영국사람들은 경찰을 『뽀비』(보비)(Bobby) 또는 『뽑』(봅)이라고 한다.
「로버트」의 애칭. 19세기 「런던」의 경찰제도를 개혁, 오늘의 민주경찰로 만든 「로버트·필」경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역시 이 애칭마저 장난스러워 도무지 위화감이 없다.
우리나라 경찰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길거리에서 자동차를 단속할 때도 깍듯이 존대를 쓴다. 때로는 그런 것이 더 서먹해 보이지도 하지만, 무턱대고 상대를 범인시하는 태도는 삼가야할 것이다.
경찰의 처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우선 우리나라 경찰은 격무에 시달리는 것 같다. 수도 적고, 장비도 시원치 않고, 또 사회의 풍정마저 살벌해 상대적으로 「히스테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그 「히스테리」를 나무라기 전에 이들이 우선 마음의 여유를 갖게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파리」의 길거리에서 한 취객이 비틀비틀 걸어가자 어느새 순경이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얘기다.
21일은 35회 「경찰의 날」이다. 오늘만이라도 경찰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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