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명 학살한 인간 도살자 결국…

중앙일보

입력

30여년 전 캄보디아 급진 공산주의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민간인 200만명을 학살한 ‘킬링 필드’의 핵심 전범 두 명에게 7일 종신형이 선고됐다.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 설립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정권 2인자였던 누온 체아(88) 전 공산당 부서기장과 키우 삼판(83) 전 국가 주석에 대해 “강제이주 등 반인륜 범죄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며 전범재판소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들의 집단 학살 혐의에 대한 별도의 재판은 연말에 열릴 예정이다.

누온 체아는 크메르루주의 1인자 폴 포트(98년 사망)의 사상과 노선을 체계화한 이론가였고, 키우 삼판은 당시 대통령과 총리를 역임했다. 이번 재판은 TV·인터넷으로 캄보디아 전역에 생중계됐다. 킬링필드 생존자들은 판결 소식에 환호했다.

두 사람은 2011년부터 열린 전범 재판에서 “우리에겐 아무런 실권이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지난해 5월에서야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검찰은 그 해 10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종신형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됐던 이엥 사리 전 외교장관은 지난해 지병으로 사망했고, 이엥 티리트 전 사회부 장관은 치매를 앓아 풀려났다. 크메르루주에서 악명 높은 교도소 투올 슬랭(S-21)를 운영해 1만4000명을 숨지게 한 카잉 구엑 에아브는 2010년 반인륜 범죄와 살인·고문 혐의로 35년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2006년 설립 이후 재판관들의 잇따른 사퇴와 파업으로 파행을 거듭해왔다.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기소 대상자를 축소하는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재판 일정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과격 마오주의 정파인 크메르루주는 1967년 무장단체를 결성한 후 75년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 이들은 사회 개조를 명분으로 지식인과 반대파에 대한 학살과 고문을 자행했다. 79년 베트남군과 캄보디아 공산 동맹군의 공격으로 정권이 무너지기까지 국민의 4분의 1인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비극은 뉴욕타임스의 캄보디아 특파원 시드니 쉔버그의 기사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를 토대로 학살된 양민이 매장된 곳을 뜻하는 ‘킬링 필드’라는 영화가 84년 미국에서 제작됐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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