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명량', 리더십에 목타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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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이순신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명량’은 연일 한국 영화 흥행기록을 새로 쓰면서 한국 사회에 개봉 엿새 만인 4일 최단기간 누적관객 500만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순신 장군은 평소에도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 1위를 차지해 왔다. 그런 그분이 ‘명량’을 통해 새삼스럽게 각광받는 이유로 시대 상황의 반영을 꼽을 수 있다. 국민은 최근 들어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면서 무기력하고 무능한 지도층에 실망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력한 리더십과 도덕성, 미래에 대한 비전,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불굴의 정신을 갖춘 지도자를 갈망한다. 국민은 이런 현실의 욕구를 영화 소비를 통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이순신 장군의 사자후에 관객은 시대상황을 떠올리며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침착하게 사람들을 설득하고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백절불굴의 지도자상,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현명한 리더상, 거기에 인간적인 면모까지 갖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을 고루 갖춘 이상형의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명량’ 현상은 단순한 카타르시스의 소비 수준을 넘어 국민과 지도층이 시대정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각계 지도자는 이를 통해 국민의 불만과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읽고 대처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연령층이 고루 찾는 ‘명량’은 세대 간 공감과 소통을 유도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각급 학교에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할 필요성을 잘 보여주면서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 교재이기도 하다. 역사 교육이 단순히 겨레의 발자취를 알아보고 이를 지식화·상식화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선인들에게서 지혜와 리더십을 배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때론 한 편의 영화가 한 시대의 고민을 가장 정확하게 웅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