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혁신' 주역 조동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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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새누리당 ‘반바지 유세 유니폼’을 기획한 조동원씨. ② 지난 달 29일 나경원 후보 지원유세에 나선 김무성 대표. ③ 반바지 유니폼을 처음 공개하는 장면. ④ 윤상현 의원이 6월 1일 1인 피켓 유세를 하는 모습. [중앙포토]

새누리당 윤상현·김세연·박대출·민현주 의원이 빨간 카우보이 모자에 하얀 티셔츠·반바지 차림으로 최고위원회의장에 나타났다. 지난달 17일 오전 8시30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발도 빨간 운동화였다. 네 의원의 등 뒤엔 ‘혁·신·작·렬’이란 문구가 한 글자씩 쓰여 있었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은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7·30 재·보선에서 히트시킨 ‘반바지 유세 유니폼’이 첫선을 보인 자리였다. 이 유니폼을 기획한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당직자들에게 “더운 여름날 유권자들에게 시원하게 혁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런 패션을 만들어 봤다”고 소개했다.

 조 본부장은 새누리당 ‘혁신 마케팅’의 공신이다. 그는 원래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란 카피를 만들어 명성을 떨쳤던 광고전문가다. 2012년 1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영입 요청을 받고 홍보기획본부장을 맡아 당의 리모델링을 주도했다. 우선 새 당명을 ‘새누리당’이라고 정했고, 상징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꿨다.

  소속 의원들조차 새누리당이 ‘새(鳥)누리당’을 연상시킨다며 불만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는 “새누리당이 쇄신을 실천하면 논란은 금방 불식된다”며 밀어붙였다. 그가 만든 ‘빨간 새누리당’ 이미지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당 혁신 노선과 맞물려 그해 총선·대선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이번 재·보선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일부 당직자들이 반바지 유니폼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표님이 직접 입으셔야 효과가 크다”는 조 본부장의 권유에 김 대표도 처음엔 주저주저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결국은 재·보선 막파에 현장 유세팀뿐 아니라 김 대표 등 지도부가 직접 이런 파격적 유니폼을 입고 접전 지역을 누벼 화제를 뿌렸다. 당직자들도 재·보선이 압승으로 끝나자 이젠 조 본부장의 감각을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다.

  조 본부장은 대선이 끝나자 곧바로 당을 떠나 광고사업에 복귀했다. 그런 그를 지난 3월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다시 불렀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홍보를 맡겼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실제로 새누리당이 큰 위기를 맞았을 때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1인 피켓 유세’였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새누리당은 김무성·서청원·황우여 의원 등 중진에서부터 초선 의원들까지 전부 전국 주요 도심에서 “도와주세요, 대한민국을 믿습니다” 등의 자필 문구를 적은 1인 피켓 유세를 벌였다. 온라인에선 “구걸하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막판 보수층 결집에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 본부장은 1일 본지와 통화에서 “새누리당이 거꾸로 4대11로 졌으면 패배의 책임을 모두 다 내가 뒤집어썼을 것”이라며 “그런 리스크가 있더라도 모든 걸 거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무성 대표처럼 30년 정치 한 사람이 반바지 입고 돌아다니면 야당은 쇼를 한다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우리 지지자들이 보면 ‘아, 저렇게까지 상황이 절박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번에 후보들이 반바지 유니폼을 입고 유세했던 평택·김포·수원병에서 모두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진심을 보여주려면 쇼도 해야 한다. 혁신은 시각적 혁신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카피라이터 원조는 송치복=사실 정치권 카피라이터의 원조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민주당에 있었다.

 2002년 대선 때였다. “저 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며 ‘상록수’를 부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 동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풀어헤친 셔츠 차림에 서툴게 기타를 치는 모습은 노 전 대통령의 소탈한 이미지를 극대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광고를 기획한 사람이 광고인 송치복씨였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와 ‘OK SK’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100% 천연 암반수 맥주 하이트’와 같은 문구를 만든 카피라이터였다. 대선 당시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캠프로 들어가 ‘노무현의 눈물’과 ‘기타 치는 대통령’ 등의 TV 광고를 히트시켰다. ‘2번 생각하면 노무현이 보입니다’는 카피도 그가 만들었다.

 새누리당의 ‘조동원 효과’도 사실은 12년 전 ‘대통령 노무현’을 만든 광고마케팅의 벤치마킹인 셈이다. 2002년 대선 후 노 전 대통령은 송씨를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가 국정홍보비서관을 맡겼다. 송씨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꽁지머리’를 하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조 본부장의 트레이드마크인 ‘턱수염’과 비교된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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