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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의 길과 새로운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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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최경환 경제팀이 ‘지도에도 없는 길’을 나섰다. 그는 지난 18일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의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생각하면 새 경제팀은 아마도 지도에도 없는 길을 걸어가야만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가 예고했던 지도에도 없는 길은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에서 그 윤곽을 드러냈다. 우선 그동안 신줏단지처럼 지켜온 재정건전성을 훼손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확장적 거시정책을 펴겠다고 했다. 확실히 과거에 정부가 가졌던 지도에는 없는 길이다. 논란이 그치지 않았던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LTV·DTI)도 화끈하게 풀었다. 지도에는 있었지만 가지 않았던 길이다. 무엇보다 경제정책의 초점을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내수(內需) 진작에 맞추겠다고 했다. 기업소득이 가계로 흐르도록 유도해 소비가 늘어나면 자연히 기업의 소득도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장공식을 기업·수출 중심에서 가계·내수 위주로 바꾸겠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종전의 지도에 나와 있던 길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최경환의 ‘지도에 없는 길’이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았던 정책을 한번 해 보자는 것이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전 정부나 박근혜 정부의 1기 경제팀은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시도나 발상의 전환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경제는 자꾸 주저앉기만 하는데 과거 정책의 틀에서 벗어날 생각은 않고 단편적인 부양책을 찔끔찔끔 내놓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경기는 속절없이 가라앉았고, 구조적인 문제는 쌓여만 갔다. 경기 회복과 구조 개선을 한꺼번에 해내지 못하면 한국 경제가 영영 일어서지 못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새 경제팀으로 하여금 ‘지도에 없는 길’을 나서게 했다. 침체된 경제와 무기력증에 빠진 국민을 일으켜 세우려면 정신이 번쩍 들 만한 특단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제자리에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지도에 없는 길이라도 헤치고 나가 보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든 길을 뚫고 나가겠다는 불굴의 의지에다 중진 정치인으로서 경력과 대통령과의 친분을 감안한 추진력까지 더해져 ‘지도에 없는 길’을 나선 최경환 경제팀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벌써 증시에선 그런 기대감이 뜨겁게 나타나고 있다. 주가는 새 경제팀이 출범한 이후 연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지도에 없는 아베노믹스를 들고 나왔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열광하던 일본 증시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최경환 경제팀은 올 경제 운용의 최대 현안인 노사 문제도 정면 돌파에 나섰다.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노사정위원회를 전면 재가동해 대타협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경제 문제에 관한 한 가위 전방위적인 총력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새 경제팀이 더없이 듬직해 보이는 대목이다. 그가 이끄는 지도에 없는 길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훤히 밝혀 줄 탄탄대로가 되리라는 희망마저 싹튼다.

 그러나 무작정 나선 ‘지도에 없는 길’이 목적지에 이르는 ‘빠르고 안전한 길’이라는 보장은 없다. 지도에 길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도 크다는 뜻이다. 자칫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간 방향을 잃고 헤매다 오히려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과거의 지도에 길은 없더라도 지형지물은 나와 있을 것이다. 목적지를 향한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 예상되는 장애물을 잘 살펴 새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최경환의 ‘지도에 없는 길’은 걱정되는 바가 없지 않다.

 우선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가 확실치 않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큰 방향은 알겠는데 정책의 목표가 단기적인 경기 부양인지, 아니면 중장기적으로 성장동력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단기적으로 경기를 살리고 장기적인 성장기반도 갖추자는 것이라고 답하면 할 말은 없으나 여전히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시정책과 미시대책의 연관성도 분명치 않다. 가계소득 증대방안으로 기업소득이 가계소득으로 환류되도록 한다는데 일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배당·임금·투자에 쓰도록 유도하는 것만으로 전반적인 가계소득이 늘어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목표는 그럴듯한데 거기에 동원되는 수단들이 과연 적합한 선택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지도에 없는 길’에서 만나게 될 위험이 어느 정도이고, 그런 위험과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부족해 보인다.

 지도에 없는 길이라도 일단 가 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더라도 앞뒤 좌우를 잘 살펴 ‘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사실 그동안에도 길이 없어 못 간 것만은 아니다.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내수·서비스업 위주로 바꾸고 이를 위해선 과감하게 규제를 푸는 길밖에 없다는 발상은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온갖 이익집단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이제 최경환 경제팀은 그 길을 가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의지와 추진력만으론 안 된다. 세심한 대비와 정교한 계획이 필요하다. 지도에 새 길을 그려 넣으면서 동시에 그 길을 개척하는 지난한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지도에 없는 길을 나섰더라도 지도와 나침반은 필요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