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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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엇보다 먼저 내 자신을 자랑하고 싶다』-.
3천안타의 강한 기록을 세운 날밤에 장훈은 이렇게 말했다. 자칫하면 오만으로 들리지만 역시 장훈다운 말이다.
매「시즌」에 2백개씩을 15년 동안 쳐 나가면 3천안타가 된다. 그러나 「시즌」 마다 2백개씩 안타를 칠 수 있으려면 남다른 각고와 비상한 기술이 있어야한다.
20세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면 우선 35세의 장년이 될 때까지도 몸이 끄떡도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부단한 훈련과 연마가 또 있어야한다.
3천안타의 기록은 인간의 한계를 무릅쓴 노력과 의지의 결과라고 봐야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장훈이 그렇게 스스로를 자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외국인이면서도 「홈런」의 왕정흡를 보는 눈과 장훈을 보는 일본관객의 눈이 달랐다.
장훈은 견딜 수 없는 모욕과 야유를 「시즌」마다 견뎌야했다. 그는 과연 「근성」의 사나이였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디까지나 승자와 패자밖에 없다. 지면 그만이다. 핑계란 있을 수 없다.
『한인놈은 몰아가라』라는 야유를 온 관중이 퍼붓고 여기에 기가 죽어 범타로 끝났다 하자. 그것은 혹은 동정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스포츠」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스포츠」의「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승자만의 것이다. 장훈의「드라마」도 그가 승자이기에 신나는 것이다.
그는 해마다 수백만의 일본인을 상대로 맨주먹으로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가장 힘든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 「링」위의 승부는 별게 아니다. 진짜 승부는「링」에 오르기 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
「알리」 가 이렇게 말 한적이 있다한다. 모든 승부의 세계가 다 그렇다. 뭐보다도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이겨야 하는 것이다.
『대타요원으로라도 남게 해 달라』고 거인「팀」에 체면불고하고 애원했던 장훈은 그로서는 가장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긴 끝이었으리라.
그는 오늘의 가장 훌륭한 한국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에게는 따로 훈장이 필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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