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서럽도록 아름다운 땅 DMZ, 그리고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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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평화와 생명의 땅 DMZ를 가다
김환기 지음
최태성·백철·손민석 사진
플래닛미디어, 408쪽
2만8000원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우리에게 새롭지 않다. 외국인에겐 다른가 보다. 매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세계 유일’이라는 말에 끌려 분단의 상징인 DMZ(비무장지대)를 찾는다. DMZ 관광이 허용된 2002년부터 지난해 연말까지 누적 관광객 수는 500만 명, 그 중 62%가 외국인이다. 내국인보다 더 많다.

 DMZ는 우리로선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상처가 드러난 곳이자 잊고 싶은 기억이 머문 곳이다.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을 멈추자는 협정이 체결된 뒤 그곳의 시간도 함께 멈췄다. 정전협정에 의해 휴전선을 따라 동서로 길이 248㎞, 폭 4㎞의 땅 DMZ가 생겨났다. 더 이상 무기 들고 싸우지 말자는 평화의 장소인데 우린 그곳을 볼 때마다 60여년 전 서로를 난도질했던 역사를 자꾸만 떠올리고 만다.

 27일 한국전쟁 정전 61주년을 앞두고 출간된 이 책은 DMZ 자연의 서럽도록 아름다운 풍광과 그곳을 꼿꼿이 지키는 사람들의 일상을 170장의 사진과 함께 담았다. 군의 협조를 얻어 DMZ와 접한 파주·연천·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을 샅샅이 훑었다.

 DMZ는 세월을 거치며 인위적인 모든 걸 지워냈다. 군사분계선을 표시하는 말뚝과 표지판 1292개는 풍파에 씻겨 사라지고 없다. 남은 건 의구한 산천이다.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젊은이들이다. 시베리아만큼 춥다고 해서 철베리아라고 불리는 철원, 소초에 가기 위해 매일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화천 등지에서 젊은 군인들은 피땀을 쏟는다. 지난달 21일 12명의 사상자를 낸 강원 고성 육군 22사단 GOP(일반전초) 총기사고는 그 그늘이다.

 DMZ의 이야기들은 낯익은 듯하면서도 비현실적이다. ‘비무장지대에 마을을 둔다’는 정전협정서 규정에 따라 DMZ 남쪽에 설치된 대성동 마을의 특수한 규정들은 이 세상에는 없을 법한 것이다. 강원 양구군 최북단 가칠봉에 있는 수영장에선 남북이 아직 체제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선전전을 하던 시절인 92년 미스코리아대회 수영복 심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사진에 비친 DMZ의 자연도 비현실적으로 깨끗해 보인다. 아마 아마존이나 남극보다 사람의 손을 덜 탄 곳일 게다. 책에 나온 ‘군인 아저씨’의 마음도 DMZ의 자연만큼이나 맑은 듯하다. “노래방·TV·전화 등 기본적인 여건이 갖춰져 특별한 불편이 없다”는 병사는 저자가 자꾸 불편한 게 없냐고 캐묻자 이렇게 말한다. “간부님들이 너무 많아서 그게 좀 피곤합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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