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에서 맛본 「3수」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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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수험생이 재수생이 되기를 희망하겠는가. 나도 『나만은 재수를 하지않겠지』하는 재학시절의 「프라이드」는 물거품처럼 꺼져버리고 아픔과 견디기 어려운 수치속에서 재수생활, 그리고 3수생활을 보냈다. 일유를 연연해하는 주위 사람들의 소망과, 그러면서도 예시에서 50%, 본고사에서 50%의 낙방이 강요되는 제도 사이에서 우리 수험생들은 우울한 수험생활을 보내야했고,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제도와 환경의 희생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과연 누가 정통한 경로를 밟은 수험생일까. 소위 일류에 가기 위해서 고교1년부터 일류「그룹」에서 꾸준히 과외를 받고 담임선생님마저 과외를 권하며, 심하면 강요하기까지 한다. 그 강요가 싫어 나는 과외 1개월만에 그만두었다. 어쨌든 과외생들은 정말 실력이 있었다. 그러나 새장에서 발육되는 닭이 몇개월만에 다 자라듯이, 그들은 모든 시간과 힘을 강요당하여 실력을 비대하게 했지만 양육된 닭에서 약품냄새가 나듯이 그들에게서도 냄새가 난다.
재수를 할 당시 나는 재수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남보다 1년을 더하여 똑같은 경쟁에 뛰어든다는 것이 비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학원까지 다니는 것은 뻔뻔스럽다고 까지 생각했었다. 그래서 재수 첫해는 혼자서 공부했고 또 낙방의 아픔을 맛본 나는 수위에 끌려 학원이란 곳을 다녔다. 지난봄, 드디어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학생들은 거의다 과외공부를 했고 또 재수생은 입학생의 반이나 되었다. 여기서 나는 큰 모순을 보았다. 이렇듯 과외생도 많고 재수생도 많은데, 왜 과외공부를 활성화하지않고 재수생에게는 일정한 신분이 없었는지 의아스러웠다.
재수생활이 부끄러웠던 것은「버스」비를 일반요금으로 내게 하고 장발자 단속에 학생과 차별단속을 하는등 일반인의 관념으로 보는 것이었다. 실력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불행을 맛본 것 뿐이다. 재수생이 학생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겪었던 수험생 시절을 생각하면 이제 친구나 내 동생의 시험을 지켜보면서 왠지 애처로와진다.
내가 전에 느껴보지 못한 이 감정은 웬일일까. 현재의 교육제도는 내 젊은 시절의 일부를 덮어버렸던 그늘처럼 생각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늘 속에서 맛본 그 느끼한 인간적 생리와 경험이 지금과 이후의 내 생활을 이끌어주는 주축이 되고 밑거름이었으니 후회는 않는다.
재수하여 진학한 나의 친구들, 3수하여 함께 진학한 나의 친구들, 또 아직도 진학하지 못한 나의 친구들아, 그리고 올해 또 그 시련을 맛보아야 할 재수생 여러분의 분발을 믿어마지 않는다. 긴 인생에 있어서 1∼2년이란 결코 긴 것이 아니며 좋은 바탕이 된다고 믿기에. 나는 그것을 대학에 정작 들어와서 다시 확신했다. <권진희 연세대 정법대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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