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가톨릭 성직자 50명 중 1명이 소아성애자"

중앙일보

입력

“가톨릭 성직자 50명 중 1명이 아동 성추행 건에 연루된 소아성애자다.”

이탈리아 신문인 라 레푸블리카가 13일(현지시간) 교황의 발언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게재일보다 사흘 전인 10일 이 신문의 에디터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났다고 한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아동 성추행 문제를 나병에 비유했다. 그리곤 “심지어 나병이 여기에도 있다”며 “악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교회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엄격함으로 대처하려고 한다”고도 했다.

통계도 제시했다고 한다. 그는 “나와 함께 이 문제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믿을만한 통계라며 교회에서의 소아성애자 비율이 약 2%라고 나를 달랜다”며 “그 정도라고 안심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난 어마어마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2% 중엔 사제도 주교, 추기경도 있다”며 “처벌받지만 그 이유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2012년 기준으로 가톨릭 성직자는 41만4000여 명이다. 교황의 통계대로라면 8000명 정도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일반인 경우 정신질환으로서 소아성애자 비율이 5%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교황의 발언 중 ‘2%라고 나를 달랜다’‘그 정도면 안심한다’는 대목은 일반인보다 상대적으로 성직자에서 소아성애자 발현 비율이 낮다는 사실과 관련 있는 듯 하다.

바티칸은 그동안 아동 성추행에 연루된 성직자의 전체 규모를 공개한 적은 없다. 다만 실바노 마리아 토마시 대주교 겸 제네바 대사가 5월 “지난 10년 간 성추행 의혹 제기 중 3420건은 신뢰할 만하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교황의 숫자는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하는 셈이다.

바티칸은 그러나 이 보도 이후 펄쩍 뛰었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바티칸 대변인은 “정상적인 인터뷰가 아니었다”며 “교황의 발언이라고 인용된 문구들이 정확하게 교황이 한 말인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도 내용 중 특히 “추기경 중에서도 소아성애자가 있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스칼파리가 녹음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용 문구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롬바르디 대변인은 그러나 “(교황의) 의지와 자세는 전달됐다”는 말도 했다. 전체적인 인터뷰 기조는 인정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취임했을 때만해도 상대적으로 가톨릭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추행 문제에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을 들었다. 올 3월 “엄격히 대처한다”면서도 “가톨릭 교회는 (아동 성추행 문제에 관한 한) 아마도 투명하고 책임성 있는 유일한 공공기관”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그러나 점차 달라지고 있다. 5월 불관용 입장을 천명한데 이어 지난주엔 아동 성추행 피해자 성추행 피해자 6명을 직접 만났다. 그 자리에서 아동 성추행을 “신성모독”에 비유했고 두 차례 용서를 구했는데 그 중엔 “교회 지도자들이 (당신들의 얘기를) 태만히 한 죄”도 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아동 성추행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지 30년, 본격화된 지 10여년 만에 비로소 바티칸이 전면에 섰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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