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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때 이른 폭염, 마른 장마 … 한반도 심상치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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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사병·일사병 같은 온열질환은 빠른 응급조치가 생명입니다. 제일 먼저 119에 신고하고, 응급조치를 해주세요.”

 어제 소방방재청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륙 전체로 확대 발령되면서 긴급 안내문을 내보낸 것이다. 이날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0도를 웃돌았고, 서울은 33도까지 치솟았다. 서울·경기·강원·충청·경북 지역에 폭염특보 또는 폭염경보가 내려질 만큼 장마철에 보기 드문 ‘기습 폭염’이 찾아온 것이다.

 올해 기상상황이 심상치 않다. 예년보다 일찍 열대야가 발생하는가 하면 마른 장마와 가뭄, 때 이른 태풍 등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강력한 제8호 태풍 ‘너구리’는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다가 제주도 남쪽 해상에서 거의 90도로 ‘급변침’하면서 일본 규슈에 상륙했다. 다행히 우리의 피해는 적었지만 일본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60여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올해에는 예년 초여름에 비해 더 많은 태풍이 일찍 발생하고 있다.

 장마는 예년보다 열흘가량 늦게 찾아왔다. 7월 초순에 중부지방에서 장마가 시작한 것은 1992년 이후 22년 만이다. 장마철임에도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내륙을 중심으로 가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올 6월 전국 강수량은 77㎜로, 평년의 절반 수준이다. 농업용수가 없어 밭작물이 타들어가는가 하면 마실 물까지 부족한 지역이 생겨났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 기상환경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있다. 여기에다 올해는 남아메리카 페루의 열대해상에서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강력한 ‘엘니뇨’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는 올 하반기에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최고 80%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엘니뇨가 발생한 해에는 집중 폭우와 심한 가뭄이 빈발한다.

 한반도에는 루사(2002년)·매미(2003년) 이후 수퍼 태풍이 상륙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 2~3년에는 큰 자연재해를 겪지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서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동남아·중국이 대(大)재난을 경험했지만 용케도 한반도는 잠잠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우리의 경계심이 풀린 상태에서 기습적인 ‘기후의 역습’을 받는다면 상상 이상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환경부·기상청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한반도의 기후변화를 좀 더 꼼꼼히 예측하고 중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웃 일본은 30년간의 장기예측을 통해 ‘장마철 소멸’ 가능성을 내다보고 재난대응체계와 농업정책을 손질해 왔다. 당장은 안전행정부와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올 여름·가을에 벌어질지 모를 살인적 폭염이나 기습 폭우, 태풍 기습, 가뭄에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라는 인적 재난에 이어 큰 자연재난까지 입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한동안 절망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