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흉터 지워주고 장학금 보태주는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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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민복기 원장이 구청에서 도움을 요청한 한 20대 여성의 문신을 지우고 있다. 그는 군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문신과 흉터를 제거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5년 된 낡은 검정 운동화, 7년 된 안경, 전통시장에서 산 5년 된 백팩을 메고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 의사. 그는 이렇게 씀씀이를 줄여 형편이 어려운 군인 430여 명의 문신을 지워주고, 불우이웃 70여 명의 흉터를 치료했다. 쌀 20t을 사서 이웃에게 전하고, 7000여만원의 장학금도 마련해 나눴다.

 대구 올포스킨피부과의원 민복기(46) 원장 얘기다. 그는 피부과 의사로는 드물게 세계 3대 인명사전(ABI·IBC·마르퀴즈 후즈 후) 모두에 피부(탈모 분야) 전문가로 이름이 올라 있다. 대한피부과의사회 이사, 경북대 의대 피부과 외래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6일 오후 찾은 병원. 민 원장은 20대 여성의 문신을 지워주고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차상위 계층 여성으로, 구청에서 도움을 요청해 봉사 시술을 하는 중이었다.

 그는 2평(6.6㎡) 남짓한 원장실에서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크게 ‘대구광역시 이주민 무료진료센터’라고 쓰여 있었다. 올포스킨피부과의원 원장이라는 직함은 명함 구석에 작게 써있었다.

 민 원장이 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0년 50사단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대를 1년여 앞두고 몸에 문신을 한 사병을 만났다. “제대를 해도 몸에 있는 문신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며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지우면 되는데, 한 번 시술에 20만원 이상하는 치료비가 없다며 울먹이더군요.”

 그는 이때 제대 후 병원을 개원해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돕겠다는 결심을 했다. 2001년 병원을 개원한 민 원장은 2군 사령부와 대구시에 연락을 했다. 형편이 어려운 군인이나 불우이웃 중 문신·흉터를 지우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병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을 치료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골프를 끊고, 자가용도 팔았다. 옷이나 가방도 마트나 전통시장에서 샀다.

 “우선 나부터 검소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서 더 많은 이웃을 살펴보자는 마음이었죠. 레이저 시술 장비가 비싸거든요.”

 민 원장은 이렇게 지금까지 13년간 500여 명의 상처를 치료했다. 병원 규모가 커진 2006년부터는 쌀 2~3t씩을 매년 구청을 통해 이웃에게 건넸다. 2010년 모교인 경북대에 장학금 1억원을 약정하고, 지금까지 5000여만원을 지원했다. 같은 해 대구과학대에도 2000만원어치의 실습기자재를 기증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이달 초 대구시장상을, 지난해에는 대한의사협회장상을 받았다. 민 원장은 “문신이나 흉터를 지운 뒤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취업했다며 연락해오는 이웃들이 있다. 이런 게 봉사를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 원장은 최근 새로운 봉사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돈을 더 모아서 밥 먹고 공부하고 치료하는 걸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작은 단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말이면 돈이나 왕창 내놓는 그런 단체가 아니라 평범하고 소박한 복지재단, 늘 꾸준히 이웃들 곁에 있는 그런 단체 말입니다.”

대구=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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