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하게 사고파는 관계로|한미 상공장관회의…무슨말이 오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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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9차 한미 상공장관회의는 과거의 회의때와는 달리 어떤 의미에선 한미양국의 경제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돌입했음을 예고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양국대표들은 2일간의 실무접촉을 통해서 무역정책, 어업협력 및 기술제공등을 포함한 경제협력, 그리고 제3국에서의 합작투자등 약국간의 협력방안을 광범위하게 토의했다.
최각규 상공장관은 한국은 수입개방정책을 계속 확대 시킬 방침을 밝히고 한국의 이같은 노력에 미국도 상응하는 조치를취하도록촉구했다. 한국측은 특히 선진국의보호무역주의 경향에 노골적인 우려를 나타냈고 그예로 최근 미국이 한국의 섬유류·철강재·「컬러」TV등에대한 수입규제를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대미 수출품중 22.8%가 수출규제 품목에 해당하며 여기에「덤핑」규제까지 취해지면 수출규제범위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게 한국측의 불만이다.
한국측은 또양국간의 교역량증가 이외에도 미국의 대한투자, 제3국에서의 합작투자, 한국경제개발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측의 입장에대해 미국측의 반응은 원칙적으로는 모두 이해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실질문제에 들어가면 오히려 한국측의 협조를 촉구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미국은 78년중 한국의 대미수출은 37억4천7백만「달러」, 수입은 31억6천만「달러」로 미국이 5억8천7백만「달러」의 적자를보았으니 시정해야할게아니냐고 강력히요구하고 있다.
5억∼6억「달러」라는 액수는 전체무역량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미국측은 한국의 경제발전속도로 보아 앞으로 미국의 대한적자폭이엄청나게 커질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2의 일본의탄생을 막아야겠다는 얘기다.
「컬러」TV만 해도 그대로두면 매년 무서운 속도로 미국시장에 파고들것이 뻔하기 때문에 미국측이 사전에 그「기」를 꺾어놓은 셈이 된다.
이러한 조치들이 한국의눈에는「선진국의 과잉보호주의」로 비치는 것이고 미국인들에게는 자국산업보호를 위한 정당방위의 길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한미간의 무역량 증가율은 괄목할만하다. 지난70년엔 9억8천만「달러」이던 무역량이 78년에는 70억「달러」로 급증했다.
「크레프스」미상무장관의말대로 한국은 앞으로「프랑스」와「이탈리아」를 제치고 미국의 7번째가는 무역시장이된다는 지적이나, 오는 85년한국의 무역량이 1천억「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은 미국이 이제 한국을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음을 반증한다.
말하자면 과거 거의 일방적인 협조요청과 수락의 형태에서 이제는 대등한「파트너」로서 새로운 관계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측이『한국같은 개발도상국에대한 수출규제를 완화대달라』고 요청하면 미국측은『한국은 이미 선진개발도상국』이라고「격상」시켜놓고나서 미국의 규제조치를 이해하고 미국상품을 더 많이 사달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한국측은 30여명의 구매사절단을 미국에 보내 22억「달러」어치의 구매계약을 체결중이고, 한국의 원자재수입도 일본편중에서 미국등 다른나라로 과감히 다변화할 것을 약속했다.
구매사절단의「쇼핑·리스트」에는 KAL의「점보」기구입을포함해서 원료·일부 시설재와부품, 그밖의 물품등인데 구체적인 품목별 명세는 다음주쯤 밝혀질것이라는게 최장관의말이다.
어쨌거나 최장관과 구매사절단 일행은 AP의「풀러」사장, 「타임」지의「그럼」회장을 면담하고「뉴욕·타임스」의 「설즈버거」발행인으로부터 오찬을 초청받는등 미국각지에서 받은 대접이 여간 융숭한게 아니다.
특히이들이「뉴욕」에서「워싱턴」으로 올때는 백악관에서「먼데일」부통령의 전용기를 특별제공, 그야말로 칙사대접을 받으며 VIP전용인「앤드루즈」공군기지에 내림으로써「한국실업인」을 보는 미국인들의 인식이 얼마나달라졌는가를 실감케했다.
이제 미국인들이 보는 한국은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때는 더 이상 작은나라가 아니라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경제대국이다.
한국은 이제 미국과 공동의 목표와 각자의 이익을위해 서로 협조하는 대등한「파트너」인 동시에 경쟁하는「라이벌」이라는「이미지」가 이번 한미상공장관회담의 저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워싱턴-김건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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