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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민에 잣대가 다른 일본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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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현기
도쿄총국장

23일 오후 일본 도쿄도의회 자민당 본부는 소속 의원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지난 18일 여성의 고령 출산과 관련된 질의를 하던 한 여성 의원(35)에게 “자신이나 빨리 결혼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야유를 던진 도의원을 출당한 것이다. 이유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유린했다”는 것이다.

 여성 의원에 대한 야유가 언론에 보도된 18일부터 일본 내에선 “여성에 대한 인권 모독의 극치”라며 “‘범인’을 찾기 위해 성문 분석이라도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2020년) 올림픽을 치를 나라로서 이런 인권 문제는 확실히 매듭짓고 가야 한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급기야는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이 “당사자가 우리 당 소속이라면 당 차원에서 사죄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여론의 십자포화 속에 결국 자민당의 한 도의원이 이날 ‘자수’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 ‘해프닝’을 전하는 TV뉴스를 보면서 두 가지 분노가 끓어 올랐다. 하나는 여성의 인격을 무시한 자민당 의원의 발언에 대한 분노, 또 하나는 일본의 ‘인권 이중성’에 대한 분노다.

 지난 20일 공개된 일 정부의 고노 담화 검증 결과 보고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다. 16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청취에 대해 “청취 조사가 완료되기 전 이미 (양국 정부의 정치적 조율에 따라) 담화의 원안이 작성돼 있었다”고 의미를 깎아 내렸다. “정부 조사를 통해선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설명에 덧붙여서다. 성 노리개로 삼은 것 갖고도 모자라 이제는 증언의 신빙성까지 문제 삼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이는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그럼에도 일본의 상당수 언론은 무슨 역사전쟁에서 승리라도 거둔 양 축제분위기다.

 어디 이뿐인가. 2년 넘게 도쿄 한복판에선 한국에 대한 헤이트스피치(인종 차별)가 판을 치지만 일 정부는 “언론의 자유”라며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빨리 결혼하면 되는 것 아니냐” 정도의 자국민에 대한 인권 유린에는 치를 떨면서 “조선인을 죽이자” “한국 매춘부들 다 쫓아내자”는 이웃나라 국민의 인권 유린에는 너무나도 관대한 2014년 일본의 자화상은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다.

 몇 년 전 영국의 한 장관이 ‘중대한 강간’과 데이트 중에 원하지 않는 섹스를 강요당하는 ‘데이트 강간’을 구별하자 영국 언론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고 한다. “강간에는 ‘중대한’이고 뭐고 따로 없다. 강간은 그냥 강간일 뿐이다.”

 일본 사회에 이 말을 인용해 들려주고 싶다. “인권에는 ‘국내’ ‘해외’가 따로 없다. 인권 유린은 그냥 똑같은 인권 유린일 뿐이다.”

김현기 도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