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의식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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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본지가 정초에 기획한『예술인의 생활및 의식구조조사』중 특히 그 문학인에 관한 조사결과는 선진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 정신문화영역안에 도사리고 있는 심층적인 몇가지 문제들을 노정시켜준 셈이다.
설문에 응한 문인중의 64%가 문학활동만으론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하고 있음은 조금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시인의 경우는 거의 절망적인 전망이며, 이는 미국같은 대국이라해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오늘보다도 시가 우대되던 50년대에도 수백명의 시인중에서 시작만으로 생활할 수 있던것은「프로스트」와「오그덴내시」단 2명뿐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문인중 85%가 생계를 위하여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하여 크게 놀랄 일도아니다. 그러나 그 태반이 교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때문에 문학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말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나라 정신문화발전의 내일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뛰어난 작가가 훌륭한 교육자일 수는 없다. 반면 또 이들이 교육에 충실하자면 어쩔 수없이 창작활동은 희생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예술창작활동의 특성이다.
그렇다고 종래와 같은 고식적인 재정지원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만은 볼수 없다. 『당국의 예술에 대한 정책적 지원』의 효과를 묻는 설문에 부정적인 회답을 한 사람이 23%나 되었다는 사실은 그런 뜻에서 새로운 문예진흥정책을 위한 중요한 암시를 던져주는 것이라 하겠다.
가령 미국에서 착실히 성과를 거두고 있는 바와 같이 문예진흥활동에 보다 폭넓은 면세의 혜택을 줌으로써 각종 재단으로 하여금 다양하고도 적극적인 문화사업을 전개·추진할 수 있도록 일종의 유수정책을 쓰는것도 고려해볼만한 일이다.
또 단순히 상금이나 장려금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우량도서를 다량으로 구입하여 전국의 각급학교·공공도서관등에 무료로 공급해주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문예진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 자신들의 질적 향상과 독서층의 확대에있다고 봐야하겠기 때문이다.
작가를 참으로 고무시켜주는 것은 사실은 돈이 아니다. 작가에게는 독자가 있다는 인식이 가장 중요하다. 적어도 언젠가는 자기작품의 진가를 인정해 줄 독자층이 생길 것이라는 신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문학활동에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는 문인이 전체의 87%나 됐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반영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특히 우리에게는 잊어서는 안될 하나의 뼈아픈 교훈이 있다.
우리 문학사의 가장 비참한 암흑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 40년대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때 양심있는 많은 문인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 당시에 발표된 글은 모두 일본어로 썼거나 아니면 일제에 아부하는 것들뿐이었다.
해방과 함께 일제에 굽히지 않은 문인들에 의한 미발표의 숨겨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리라고 기대한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도 나오지는 않았다. 작품이 햇빛보는 날이 없으리라는 좌절감이 작가들의 창조력을 그토록 완전히 고갈시켜 놓았던 것이다.
작가는 언제나 대화를 찾는다. 그리고 독자를 위해 작가가 있다는 것은 독자가 있어서 비로소 작가도 자란다는 얘기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문예진흥정책을 설정하는데 있어서는 보다 건강한 독자층의 획득과 확대, 보다 자유스러운 작가와 독자층과의 보다 많은 대화같은 것이 우선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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