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새 총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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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개석의 장남 장경국씨가 자유중국의 새 총통이 되었다.
신문들은 모두 이제 장경국 시대가 정식으로 막을 올렸다는 표제를 붙이고 있다.
그가 지난 72년에 행정원장에 오른 때부터 예상됐던, 당연한 코스이기는 하다.
그는 승격할 때마다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50년대까지는 냉혈적인 인상을 풍겼다. 별명도 「장경국타노호」라 할만큼 매서운 칼자루를 휘둘렀었다, 그렇던 그가 행정원장이 된 다음부터는 온안과 미소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도 바뀐 것이다. 사람들의 애정과 지지를 강요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마력을 그는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를 둘러싼 내외정세도 단순하지가 않다. 국제고립감은 날로 깊어져만 가고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 72년에는 닉슨의 중공방문으로 곤욕을 치렀었다. 그러나 카터도 중공과의 거리를 좁혀가며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도 장경국은 탁월한 외교솜씨와 영도력을 보여왔다. 72년 말에는 일본과의 국교단절에 직면했을 때였다.
이때 대만내부에서는 대일강경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체면도 살리고 실속도 차리는 묘안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문제는 내부에 있다. 지금 대만의 인구 1천5백만명 중에서 8할 이상이 대만토박이다.
장개석 시대에는 이들과 본토인과의 상극이 매우 심각했다. 그것을 무마하려고 장경국은 행정원장에 취임하는 동시에 대만인을 대거 등용했다. 각료도 3명에서 6명으로 늘렸다. 처음으로 대만성 주석에 대만인 사동민을 기용하기도 했다.
이것은 「국대합작」이라 하여 매우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는 충분치 못했는가보다.
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던 중국청년반공구국단의 이환 주임이 해임된 것도 대만인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 순수한 본토인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의 모두가 노령화해서 무대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이 대만인과 결혼을 통해 혼혈화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에게는 국토회복이라는 1세들의 피맺힌 사명감을 실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미증유의 경제적 안정과 번영 속에서 자란 2세들에게는 국민당의 통제가 역겹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화국봉은 지난 2월에도 『인민해방군은 대만해방을 위해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이런 속에서 어떻게 대만을 이끌어가야 할지 새 총통의 어깨는 매우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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