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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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또다시 「화마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올해도 날씨가 쌀쌀해지는가 했더니 어김없이 곳곳에서 이미 대소화재사고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며칠전 구미공단의 한 방직공장에서 불이나 저장 중이던 원면과 보관창고 등 5억원 어치의 피해를 낸데 이어, 16일에는 또 국제방직의 아산공장에서 큰불이 나 8천만원 어치의 재산을 불태웠다.
겨울철엔 불을 많이 쓰기 때문에 화재위험도 그만큼 높다. 통계상으로도 11월∼3월까지의 동절화재는 연중화재의 약70%를 차지, 집중적인 발생률을 나타내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년 겨울만해도 총3친1백47건의 화재가 발생, 49억2천여만원의 재산피해와 함께 1백9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이는 전년도인 75년 겨울에 비해 발생건수에 있어서 29·2%, 인명피해는 55·6%나 더 늘어난 것이다.
해마다 화재로 인한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이 이처럼 막대하다는 것을 생각할때 화재예방활동의 강화와 진압태세의 확립은 웬만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일 못지 않게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생활「패턴」의 현대화와 산업의 발달에 따라 국민들의 주변에는 도처에 새로운 화재의 요인이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른바 연료의 현대화로 도시민은 하루도 유류나 「가스」연료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와 함께 건물 및 주거의 고층화 경향에 따라 곳곳에 발화요인이 숲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화재의 성질도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때문에 이에 대한 방비나 소방정책도 그만큼 새롭고 철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까지 써온 소방용 사다리차 한가지만 보더라도 그 효용 높이는 32m로 기껏 10층 이하의 건물에 대해서 밖엔 쓸모가 없다. 물「탱크」차도 최근 대형화재의 주종을 이루는 유류·「가스」·화공약물·합성수지제품 등 특수인화물질에 의한 화재에는 무력하다. 이런 점에서 소방장비의 현대화는 우리나라 소방정책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장비현대화와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예방 제1주의적 방화의식의 확립이다. 모든 재해예방대책이 그러하듯 방화대책도 평소부터 빈틈없는 안전점검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의 제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점에서 특히 공공시설·고층건물·시장·연쇄상가 등 화재취약지구의 건물주와 사용자는 소방법상의 의무규정을 솔선, 엄격히 이행함으로써 자체소방시설과 장비를 갖추는데 좀 더 적극성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설마하는 생각으로 소방시설을 외면하고 오히려 시설비보다 적은 벌금을 무는 쪽을 택하겠다는 사고는 이제 버려야할 때가 왔다.
이와 함께 일반가정에서도 난로나 전열기의 사용에서는 물론, 아궁이 관리 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화재예방에 유념할 것이 요청된다. 대수롭지 않게 방치한 연탄불, 또는 시중에서 무심히 사들인 불량전기용품의 사용이 언제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막대한 재산을 불살라 버리는 비극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해마다 겨울철이 시작되기 바쁘게 연중행사처럼 화재를 일으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겪는다는 것은 문명사회의 시민으로서 수치스런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화재로부터 스스로를 지킨다는 자구의식의 고조와 불조심의 생활화가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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