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의 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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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우리속담이 있다. 후둑 후둑 나무 잎사귀에 닿는 빗소리마저 분주하다.
『현명한 사람은 덧없이 가는 세월을 슬퍼한다』는 시성「단테」의 말이 새삼 귓전에 머무른다. 가을이면 시계의 초침소리가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것도 같다.
일상 중에 시문을 지배하며 사는 사람들은 드물다. 하루하루 시간에 업혀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열차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마음이 분주해지는 때가 있다. 바람이 으슬 대고, 시장엔 잘 익은 과실들이 넘쳐 있고… 그런 가을날이면 모두 시간의 덜미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모모」라는 동화가 있다.
독일작가「미하엘. 엔데」의 작품. 도둑맞은 시간을 다시 찾아서 인간들에게 나누어준다는 소녀「모모」의 이야기.「유럽」의「베스트셀러」로 이미 15개국에서 변역 소개되기도 했던 성인을 위한 동화다.
현대인들은 마치 무엇에 쫓기는 사람들 모양으로 나날을 경황없이 지내고 있다. 새로운 일거리·새로운 변화·새로운 욕망 등은 잠시도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의 생활은 메마르고 기계처럼 규격화해 간다.「미하엘·엔데」는 그것을 풍자하려고 했다.「시간저축은행」을 만들어 모든 사람이 여기에 시간을 맡겨 놓고 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기발한 생각도 해본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 가는 사람들의 몰골이 딱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잊고 사는 지혜도 가져 볼만하다. 시간을 잊고 사는 것은 시간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다. 각박함, 초조함에서 벗어나 다시금 신선하고 생명감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허송세월」은 시간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사람들에게나 있는 시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한탄하기 전에 시간을 어떻게 부려 왔는 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간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하고 언제나 쫓기며 산다.
그러나 각박한 시간이라도 그것을 재단할 수 있는 사람에겐 뜻 있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때로는 산책도 할 수 있고 때로는 한가한 마음으로 휘파람도 불 수 있다.
부지깽이도 덤벙대는 가을, 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줄 알아야 하겠다. 시간은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우리가 시간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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