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아시아」정책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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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아시아」정책이 큰 전환기를 맞고 있다. 중공·월맹·북괴를 반대하는 지난 25년간의 봉쇄 정책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미국무성의「홀브루크」차관보는 그것을『「아시아」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왔다』는 말로 표현했다.
확실히「카터」행정부의 새로운「아시아」정책이란 단순히 주한미군의 철수계획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전반적인 정치외교상의 방향전환까지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미국이 과언 그러한 정책전환을 어느 정도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대략 어떤 윤곽의 것이냐 하는 것만은 지금으로서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홀브루크」차관보 자신의 재야시절 논문에 의한다면 미국의 새로운 「아시아」정책이란 미국이 일본을 제의한 모든「아시아」국가들에 대한 개입주의를 끝내자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도 미국의 국가이익에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란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지장이 없을」이유로서는 소-중공 분쟁의 항구화와 중공의 온건 화, 그리고 반공「아시아」국들의 자립능력 증대가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비교적 홀가분한 자세에서 모든「아시아」국들과 평범한 외교관계를 담담하게 맺어 갈 뿐, 월남전 때와 같은 특별한「발묶임」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아시아」지역의 문제는 1차적으로는「아시아」인들 스스로가 대처해 나갈 문제로 밀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을「아시아」의 개별국가들에 적용할 경우, 중공이나 월맹에 관한 한 문제는 거의 끝났다고도 볼 수 있다. 미-중공의 수교엔 자유중국의 장래문제가 걸려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 역시 별다른 난제는 없는 편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는 어떤가.
주한 미 지상군의 철수라는 순 군사적인 상황 변화에 관한 한 우리도 그 변화에는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자세에서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자주 국방의 능력과 국민적인 자신가 미국의 변함없는 협력이 지속될 수 있는 한 공연히 변화 자체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괴의 교조주의가 여전한 지금 단계에서 미국이 북괴에 대한 정책적인 자세까지 재고하고 싶어하는 듯한 암시를 계속 던진다는 것은 북괴에 이롭고 한국엔 불리한 교란 요소로 작용하기가 쉽다.
뿐만 아니라 북괴가 남-북 대화나 공존방식을 외면하고 있는 이 상태에서 소-중공의 대한 태도는 완화되지 않는데, 미국의 대 북괴「제스처」만 달라진다는 것은 형평의 원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또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책임있는 초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생각이라면 우선 소-중공을 움직여 북괴의 대화 순응부터 먼저 유도해 내야 할 일이다. 그런 다음이라야 비로소「밴스」 국무장관이 30일 언급한 바와 같은 4자 회담 내지는 교우승인 같은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하튼 한반도 주변정세는 길고도 느리나마 그 어떤 전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듯한 기미만은 장내예측의 한 자료로 정시해야 할 것 같다.
이 전환기를 맞아 한국의 안보·평화외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란 결국 성열되고 세련된 자주성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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