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은 많을수록 좋지만…|박용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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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근자 화랑이 부쩍 늘어나 전시회풍년이다. 서울에만도 15군데나 된다고 한다. 그만큼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뜻이므로 어느 모로 보나 미술애호가에게는 좋은 일이다.
전람회기간을 1주일씩 잡아 15개 화랑이 연간 6, 7백 명의 작가들이 개인전을 갖게 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된다. 전국의 화가들이 서울에만 모여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모든 작가들이 1년에 한번쯤은 자기의 작품을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행복한 처지도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화랑은 한결같이 영리를 추구하는 화랑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우리들의 체제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문화적인 행위라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화랑의 증가추세는 우리들의 참다운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체로 우리네 화랑들은 세 가지 의미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로, 그림을 파는 시장으로서의 화랑을 들 수 있겠고, 둘째로는 작품을 통하여 작가와 감상가가 「커뮤니케이션」을 갖는 발표장소로서, 그리고 셋째로는 신인들이 자기작품을 인정받기 위해 활용하는 장소 등이다.
첫째의 경우, 거의 문화의식이 없는 화랑이므로 처음부터 영리행위만을 추구할 것은 당연하다. 둘째 경우엔 문화의식이 있는 화랑이므로 무엇보다도 그런 화랑에 애착이 가고, 또 그런 화랑에서 보여주는 기획전이나 개인전은 그런 대로 믿을 만하고, 또 의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화랑은 몇몇 되지 않는 것 같다. 상식이지만, 그런 화랑은 냉엄한 자본의 생리에 밀리어 오래 버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셋째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많다. 신인들의 왕성한 발표의욕을 소화시켜준다는 점에선 마땅히 주목할 만 하지만, 그러나 그 밑에는 역시 자본의 생리가 꼬리를 친다. 대학을 갓 나왔다거나, 혹은 대학을 나온 지 상당한 기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이렇다하게 이름을 얻지 못한 신인들을 상대로 장소를 대여하지만, 그 대여비가 적지 않은 액수여서, 결국 돈이 없으면 그토록 발표하고 싶은 작품전도 못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와는 반대로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화랑을 빌 수 있게 되므로, 작품이야 좋든 나쁘든 일년에 두세 번씩 개인전을 갖는 사람도 있게 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만일 작품이 좋으면 돈이 없고, 돈이 많으면 그 대신 작품이 좋지 않은 것이 통례가 된다면 이러한 화랑들은 결국 매년 반복하여 일반 미술감상 객에게 좋지 않은 작품만 내리매기는 꼴이 된다.
그런데 주목할만한 현상은 이러한 화랑일수록 1년「스케줄」이 꽉 짜이게 된다. 물론 첫째의 「케이스」에서처럼 아예 문화의식이 없는 화랑들은 더욱 그러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미술감상 객에게는 그런 화랑은 관심이 없다.
이렇게 쓰고 보면 결국 우리네 화랑들은 그렇게 많은 숫자와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 제대로 바람직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된다. 말하자면 좋지 않은 작품들만 열심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이 어찌 화랑만의 책임이랴. 보다 많은 책임은 작가들에게 있다. 본시 좋은 화가는 되도록 자기의 작품을 아끼므로, 두 번 보여야 할 것을 한번으로 깎는 그런 겸손함을 갖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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