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백과 신념으로 산 일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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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항상 일선 기자들에게『기백과 신념이 가득 찬 지사정신을 잃지 말 것』을 강조한 원로 언론인 석천 오종식 씨의 30년 언론계 생활은 한마디로 외곬인생이었다.
1906년 경남동래에서 출생한 석천은 24년 일본동양대 전문부 문학과를 나와 46년4월「민주일보」창간과 함께 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47년 초대 사회부 차관생활 5개월을 빼고는 줄곧 언론계와 관계를 맺어 경향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47년) 서울신문주필 겸 전무(49년), 다시 경향신문주필 겸 편집국장(53년) 한국일보 부사장 겸 주필(55년) 서울신문사장(60년), 국제신보사장(62년), 대한공론사 이사장(72년)을 지냈고 신문연구소장(66년), 방송윤리위원장(67년), 신문협회고문, IPI회원으로 일하는 등 이 땅의 언론이 정착하는데 기여했다.
신문에 날카로운 논설을 쓰는 외에 수필가로서 의 필명을 날리기도 했다.
석천이 발표한 평론「사회정책 소고」「근대정신의 파탄」외에 수필집「원숭이와 문명」「연북만필」「용용기」「혁명의 원근」등은 독특하면서도「시니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석천은 언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성균관대·동국대 등에 출강, 많은 제자들을 지니고 있다. 동료는 물론 후배기자나 제자들과 자주 술자리에서 어울렸던 석천은 말술을 즐겼고 『신문기자는 가난을 천명으로 알아야한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64년에는 언론 창달에 이바지한 공으로 무궁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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