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청은 모 생전부터 배척되고 있었다"-로스·테릴 교수(하버드대·중공문제 전문가)가 본 「강경파의 몰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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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년 동안 중공을 3차례 방문했던 미국의 저명한 중공문제전문가 「로스·테릴」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17일 「워싱턴·포스트」지에 『중공강경파들의 몰락』이란 글을 기고했다. 다음은 『8억의 중공』등 중공관계저서를 저술한 「로스·테릴」의 글을 간추린 것이다.<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모택동이 죽은지 한달도 못돼서 급급하게 일어난 숙청은 아마도 급진파들이 모의 빈자리를 신경질적으로 날치기하려다가 그런 운명을 자초한 것이겠지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강청은 이제 그녀가 결코 올라갈 수 없었던 무대인 정치에서 떠났다. 그녀와 제휴했고 또「계약혁명」에 대한 공감을 같이했다는 혐의로 3명의 상해파 지도자들이 강청과 함께 끌려 내려갔다.
이 상해의 4인조가 힘에 의한 「쿠데타」를 기도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중공이 좌익을 제거한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강청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작년 호남성 조산에서 모택동의 생애에 대한 기념전람회가 열렸을 때 나는 모의 첫째부인 양개혜의 커다란 사진을 봤다.
내가 71년에 조산을 여행했을 때와는 달라진 사실이다.
그 사진을 건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화국봉은 당시 호남성당서기였다. 강청의 승인을 받아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먼젓번 부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은 현부인을 욕보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장난이다.
작년 가을 중공전역을 돌면서 내가 봤던 강청에 대한 가장 따뜻한 태도는 무표정한 침묵이었다. 금년, 4월10일 북경천안문광장에서 강경파에 반대하여 수천명이 폭동을 일으킨 것은 「서태 후」의 권위가 쇠퇴했음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한 대자보는 그녀의 이름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3개윌전에 죽은 주은래의 추억을 애도했다. 『강물이 주은래의 추억을 씻어가지 말도록 하자』는 문귀는 강청에 대한 일격이었다.
연로한 당 간부들은 문화혁명기간에 강청이 자신들에게 가한 공격에 분노하고 있었다. 지식인들은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그녀의 호전적인 정책에 반대했다.
일반국민들은 등소평 전부수상과 주은래에 대한 그녀의 가시 같은 태도를 싫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청은 공을 쌓아서 당당하게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모의 부인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뒷문으로 권력의 자리에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10년이 지난 뒤 문화혁명의 망령들이 몰려났다는데 있다. 젊은이들 중에는 문학혁명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측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공사람들은 이런 추세가 잘못임을 알게됐다. 사회주의적인 신념과 모에 대한 충성의 시험으로서 1970년대를 통해 문학혁명의 기억을 간직하려는 강청과 극좌파의 노력은 제동이 걸리고 반발까지 받게되었다.
문혁은 공산주의로의 신속한 이행을 위한다는 구실로 일반시민들의 개인적인 활동을 줄이려 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자기네 집 주위에 채소를 심고 돼지를 키우며, 그들이 생산해 낸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하고자 했다.
「보너스」제도를 없애려했다. 그러나 더 많은 일을 하고 특수한 기술을 가진 노동자들은 자기네들의 업무량에 상당하는 보상을 받도록 되어있다.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키려했다. 하지만 중공인들은 「이념적으로 올바른」 「오페라」따위에는 이제 신물이 났다.
모는 좌파를 옹호했지만 그들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중도좌파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는 75년 고전적인 문귀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주은래는 좀더 휴식을 취하고 등소평은 좀더 일을 하고 왕홍문은 공부를 더하고 강청은 말을 좀 덜해야하느니라. 귀는 열려있도록 만들어진 것이지만 입은 닫혀 있도록 만들어져 있느니라.』
71년과 75년 사이에 중공을 방문한 나는 강청이 지배하는 문화와 교육분야를 빼고는 모든 면에서 강경파의 정책들이 점점 배척되는걸 보았다. 좌파는 벌써부터 궁지에 몰렸던 것이다. 최근의 좌파숙청은 그러니까 최후의 일격과 같은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좌파의 손실은 군부의 이득을 뜻하는 것인데 여기에 위험이 있다. 중공군은 농민성향의 조직으로서 국내문제에 있어서는 온건으로 기울지만 외교면에서는 소련과의 화해를 원할지도 모른다. 한때 소련군과 함께 행진을 하면서 소련의 신예장비의 맛을 본 그들에게 미국보다 이제는 소련이 제1공적이라고 우긴 모택동의 변증법적 전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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