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기밀만재 망명기 「미그2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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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일 낮1시57분. 정체불명의 비행기 1대가 뒤꼬리의 날개를 곤두세우고 일본 북해도 「하꼬다데」공항에 비상 착륙 했을 때 세계는 두번 놀랐다. 그것이 신비 속에 가려졌던 소련의 「미그」25라는 점에 긴장했고 조종사가 미국망명을 요청했다는 소식에 다시 놀랐다.

<첩보전의 초점이던 비밀>
「미그」25가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67년 가을 「모스크바」의 항공 「쇼」에 3대가 한편대로 관중의 머리 위를 스쳐갔을 때였다. 기체가 지나간 후 얼마있다가 고막을 찢는 폭음을 듣고는 모두 아연했다. 사회자는 「고속요격기」라고 짧게 한마디로 소개했다.
종래의 소련제 전폭기는 기수 부분에 공기통이 있고 동체가 둥근 것이었으나 이 신형은 공기통이 동체의 양쪽에 나뉘어있고 동체는 상자처럼 네모를 이루고 있는 것부터가 달랐다. 외형은 흡사 미국제 신예기를 닮았다.
그후 소련은 「미그」25가 속도와 고도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고 발표하고 다시 그 신기록을 경신했다고 몇 차례 공표 했었다. 최근엔 이 신예기로 소련수도권 방공부대를 편성했다고 전했다.
「미그」25가 실전에 등장한 것은 73년10월의 제4차 중동 전.
「이스라엘」은 정체 불명기가 「시나이」반도 상공에 나타난 것을 발견, 「팬텀」기를 출격시켰으나 속도미달로 놓치고 말았다. 「레이다」는 「미그」25의 속도를 「마하」3이상이라고 밝혔다.

<한때 탈취·폭파선로 긴장>
서방의 군사첩보전의 초점은 「미그」25로 쏠렸다. 분석결과 종래의 소련 기는 항속거리가 짧고 공격보다는 방어용 요격기라는 성격이 짙었으나 신형은 탑재량과 항속거리가 재래형의 두배 이상임이 밝혀졌다. 이것은 방어용에서 공격용으로 성격이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서방측은 「미그」25의 구조·성능 등 제원을 어느 정도 추정해냈으나 모두가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미사일」유도방식이나 전파주파수를 비롯하여 고속을 내는 「엔진」이나 기체의 재료 등 모든 것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이 모든 신비가 이번 불시착으로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서방세계엔 핵 병기보다도 큰 기밀이며 사진만으로도 진귀한 정보다. 일본 방위청 관리는 『가능하면 안 주었으면 좋겠다』고 욕심을 냈다.
일본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기술진20명으로 정밀조사를 진행중 이다. 일본당국은 부 인 하고 있으나 이 조사작업엔 미국 기술진도 가담한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조종사 「벨렝코」중위는 망명자에 대한 국제관례와 인도적인 원칙에 따라 미국에 인도됐다. 그는 일본의 출입국 관리법(밀입국)·총기법(권총소지)·항공법(저공비행)등을 위반, 검찰에 송치됐으나 기소유예처분을 받아 강제출국형식으로 9일 하오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일본 출국에 앞서 주일 미국 및 소련 대사관원에 의해 망명의사를 확인하는 간소한 절차도 취해졌다.
문제는 「벨렝코」가 미국에서 털어놓을 소련의 군사기밀에 있다. 「미그」25에 관한 정보 외에도 소련군의 배치상황·훈련 및 교육실태·정찰「코스」·작전영역·통신 암호 등이 미국에 알려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것은 명백히 양국의 기밀균형을 파괴하는 것이다. 소련은 군사상의 방어계획을 수정하고 다른 신예기의 개발을 더욱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종전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소련의 다음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 당사국인 일본은 특히 긴장해있다. 한때는 소련의 중공특공대가 「이스라엘」의 「엔테베」작전처럼 「하꼬다데」공항을 기습, 「미그」25를 탈취하거나 폭파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였다.

<「송환」싸고 일·소 관계 미묘>
소련은 기체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일본은 비행기가 일본영공을 침범했다는 점을 들어 기체를 증거물로 영치하여 조사하는 한편 국내법에 의한 법적 처리가 끝난 다음 기체반환여부를 외교교섭을 거쳐 결정하겠다는 사무적인 태도다.
일본관리는 소련기체송환요구가 외교적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기체는 송환되더라도 해체되어 배로 실려가게 될 것이라고 실무자들은 보고 있다. 「하꼬다데」공항의 활주로가 2㎞밖에 안돼 「미그」25의 이륙이 어렵고, 또 이륙이 가능해도 소련조종사가 있어야 되는데 그 출입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기체는 반환될 것으로 「업저버」들은 보고 있으나 이문제로 인해 소련측 의 감정을 몹시 상하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빛도 일부에서는 보이고 있다. 기체반환을 놓고 일본에서는 일소현안 문제의 일괄 타결론이 나와 있다. 지금 양국간에는 북방영토반환문제, 일 소 강화조약, 어업협정 등이 미결로 남아있다.
과거 일본정부의 여행증명만으로 가능했던 일본인의 북방영토 성묘가 올해엔 소련이 사전동의(입국「비자」)를 받으라고 주장, 일본이 성묘계획을 취소하는 등 외교 관계가 원만치 못했다.
이런 양국 관계가 이번 사건으로 더욱 복잡해질지, 아니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어쨌든 「미그」25 불시착으로 외교·군사적인 입장에서 소련이 몹시 불리 할 것만은 명백하다. <구종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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