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저스·샌드버그 자사주 판 뒤 주가 폭락 … 수상하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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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저스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주주에게 서신을 띄웠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하는 현황 보고 형식을 빌려서다. “아마존은 성공과 실패 모두에서 배우고 성장해왔다. 혁신의 과정에서 실패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아마존은 있는 힘껏 투자를 계속해 나가겠다.” 베저스는 무모하다 싶은 도전이 성공의 비결이라며 끊임 없는 투자와 성장을 주주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달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4일 “최근 6개월 새 베저스는 보유하고 있던 아마존 주식 10억 달러(약 1조원)어치를 내다 팔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기술주 폭락 사태가 빚어지기 직전 인터넷 기업 경영진이 보유 지분을 대거 팔아치우는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고 폭로했다. ‘닷컴 버블’ 위기 뒤엔 내부자 소행이 있었다는 얘기다.

“오로지 투자”를 강조했던 베저스만 해도 올 2월 3억5100만 달러 상당의 아마존 주식을 팔았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지분을 내놨던 탓에 아마존 주가까지 타격을 입었다. 베저스가 대량으로 주식을 매각한 즈음 아마존 주가가 꺾이기 시작했다. 두 달 만에 주가가 14% 내려앉았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도 이 행렬에 동참했다. 샌드버그는 페이스북 상장 직후인 2012년 11월 2022만 주를 갖고 있었다. 기술주 열풍을 타고 페이스북 주가가 오를 때마다 주식을 꾸준히 처분했다. 지금은 보유 지분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베저스나 샌드버그만이 아니었다. 2012년 나란히 상장한 소프트웨어 회사 ‘워크데이’ ‘스플렁크’의 임직원은 의무보호예수(기업 상장 후 6개월 동안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팔지 못하도록 한 제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주식을 대거 팔았다. 이들 기업은 최근 2개월간 주가가 30~40% 빠졌다.

 문제는 이들이 ‘내부자(insider)’라는 데 있다. CEO나 임직원만큼 회사 속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바깥 사람은 모르는 기업 상황을 속속들이 아는 경영진이 주가가 한창 오를 때 앞다퉈 주식을 팔았다는 건 투자자에겐 부정적인 징후다. 그만큼 경영진이 자기 회사 주가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베저스나 샌드버그 등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가가 떨어지기 전 주식을 팔아 부당 이득을 챙겼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설사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IT기업 경영진의 자사주 대량 매각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닷컴 버블 붕괴 우려를 부채질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FT는 전문가 분석을 빌려 “기업 경영진이 회사 주식을 내다 파는 일은 분명히 투자자 불안을 키우는 요소”라고 했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지난주 계속 떨어져 4000선 아래에 있다. 올 2월 이후 최저치다. 더욱이 올 1분기 기업 실적 공개 시기를 맞았다. 기술주의 경영 성적표가 시장 기대에 못 미칠 경우 거품 우려는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주요 기업의 수익이 예상보다 저조할 것이란 전망이 나스닥을 비롯한 증시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매도 행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짚었다.

조현숙 기자

◆내부자 거래(insider trading)=기업 경영진이 자기 회사 주식을 사고파는 일. 외부 투자자는 알 수 없는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미리 주식을 매매해 큰 수익을 내거나 다른 주주에게 피해를 덮어씌우면 범법 행위로 간주돼 처벌을 받는다. 2002년 미국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는 자신이 투자한 생명공학기업 임클론에 악재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주식을 내다 팔아 부당하게 손실을 회피했고 관련 혐의로 징역 5개월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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