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독트린」이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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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몇 차례의 정상회담과 외상회의를 거듭하면서도「아세안」(동남아 국가연합)의 대내외적인 안정은 좀처럼 완결되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물론 강대국들과「인도차이나」공산국들이 아직까지는 동남아 정세에의 불개입보다는 그에 대한 영향력 침투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아세안」에 대한 소·중공의 경쟁적인 진출욕과「하노이」의 적대감이 엄존하는 한 이 지역의 중립화는 국제적인 공인을 보장받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24일「마닐라」에서 개최된 제9차 외상회의에서도「로물로」「필리핀」외상은 다시금 종래의 지론이나 다를 바 없는「아세안·독트린」이란 것을 제창했다 한다.
「아세안·독트린」의 골자는 미·소·중공 등 강대국들이 이 지역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달라는 것이다. 「아세안」을『역내 국가들만의 독자적인 영향권』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 자체는 물론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아세안」을 둘러싼 주변정세가 과연 그것을 허용할 이만큼 여유 있는 것이겠는가. 지금 북경과「모스크바」, 그리고「하노이」는 제각기 다른 야심을 가지고「아세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그들간의 합의란 도저히 기대할 처지가 못되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촉수는 이미「하노이」와「라오스」를 거쳐「필리핀」과 남태평양에까지 뻗어오고 있다.
북경은 그에 대한 반격으로 인도와 국교를 정상화하고, 「싱가포르」「파푸아·뉴기니」「뉴질랜드」「파키스탄」「오스트레일리아」와 접근, 소련팽창주의에 대항 공동의 대비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북경의「반 패권」과「모스크바」의「아시아」집단안보안에 대해「하노이」는 그들대로「아세안」을 적대시하면서「동남아 공동시장」이란 대안을 내걸고서「하노이」주도형의 동남아 권을 제창한 바 있다.
남사·서사 군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북경「하노이」「필리핀」의 각축은 그와 같은 3개의 전략 선이 빚어낸 하나의 조그만 충돌사고였다 할 수 있다.
북경의 전략은「아세안」이「하노이」의 팽창과「모스크바」의 침투를 두려워하는 한, 「아세안」의「중립」을「반 패권」으로 연장하도록 충동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해「모스크바」의 전략은 그「중립」이「반 패권」으로 연결되지 않게끔 적극적으로 그 울타리 안에 침투해 들자는 것이다.
때문에「아세안」으로서는 그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외교를 시도해 자신의 새로운 진로를 추구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 등거리 외교란 자체의 내부적 통합 성이나 능력에 뿌리박은「힘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이이제이적 곡예외교의 감이 농후하다.
더구나「아세안」내부에는『어느 한 나라만 반대해도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이질성이 도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대 공산권 견제력으로 존재하던 미국의 군사력마저 점차 감소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원은 많으나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야만 할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아세안」이 실질적인「중립」을 보장받기까지에는 너무도 많은 난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싯점에서「아세안」이 자신의 안보와 평화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외교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자체 내 부조리의 일소와 국민복지의 향상을 통한 사회안정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점은「아세안」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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