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민족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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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6·25 스물여섯돌을 맞는다. 이 날이 올 때마다 우리는 가슴을 저미는 통한과 분노를 억제할 길이 없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악몽들, 한시바삐 떨쳐버리고만 싶으면서도 도저히 잊어버릴 수는 없는 원한이요 교훈이다.
일요일 새벽의 방심을 찌른 북괴의 기습남침은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모든 것을 짓밟아 버렸다.
반역의 학살자들이 패주하고 난 다음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곤 엄청난 아픔과 폐허 뿐이었다. 1백30만명의 사망·실종자와 40만명의 전사자, 1천만명의 이산가족과 40만명의 행방불명자가 가실 길 없는 별리의 아픔을 낳았다. 그러나 그때의 한을 어찌 단순한 숫자 하나로 나타낼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새겨진 상흔은 스물여섯해가 된 오늘 이 시각이 되도록 아물 줄을 모른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는 한 6·25는 결코 지난날의 고사가 아니라 생생한「오늘」이다.
6·25를 하나의「역사적 현재」로서 바라본다면, 그날의 아픔과 분노는 마땅히 내일을 위한
귀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아와 비아와의 대립>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사를「아와 비아와의 대립」이라는 안목으로 바라보았다.
「아와 비아와의 대립」에서「아」로 표현되는 민족의 대외적인 독립의지와 대내적인 독립의지가 굳건히 확립되었을 때는 그 어떤 외침이라도 능히 막아내고 물리칠 수가 있었다.
고대 한사군의 4백년 강점을 몰아내고 글단·몽고·당태종·수양제·수길의 침노를 격퇴한 선인들의 기개가 바로 그런 저력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숱한 열강의 으르렁거림 속에서도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를 지키며 민족의 명맥을 연면히 이어올 수 있었던 우리 겨레의「살아온 힘」이었다.
반면 민족이 그 독립에의 기상과 통합의지를 상실했을 때는 국파민망의 한을 모면할 길이 없었다. 멀리는 그만두고라도 가까이 한말의 비운이 그 점을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에게 뼈아픈 상처를 남겨준 6·25의 참극 역시 따지고 보면 그와 같은 해이와 방심과 의타심에 기인했다는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 『설마 남침이야 해 올라고…』하는 방심과, 『혹시 남침하더라도 미국이 있으니까…』하는 의타심이 자위와 통합의지를 해이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호혜적인「파트너」로서의 미국의 지원과 협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자위는 어디까지나 그 나라 국민의 전담사가 되어야 하지 우방의 도움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도움을 받더라도 그것은 보완적이고 보조적인 기능에 그치는 것이지, 내 민족의 운명과 내 나라의 역사에 책임을 지는 구극적인 주인은 오직 나 자신일수 밖에 없다.

<국란 극복의 역사적 교훈>
주인의식에 투철했던 우리 선인들은 국난에 처했을 때 위대한 단결력과 자위력을 발휘했다.
안시성과 금산 7백 관민의 용전에서, 삼별초와 한말의 의병운동에서 그와 같은 저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 때의 자위력은 단순히 군사력만은 아니었다. 군사력을 지탱하고 추진하는 동포 개개인의 투철한 소명의식의 총화였다 해야 옳을 것이다.
때문에 만약에 우리가 그때 좀 더 선견지명을 가지고서 국난을 예방하고 대처했더라면, 만약에 그때 우리가 좀더 자주적인 국방태세를 가지고 침략에 대처했더라면, 6·25의 참극은 분명히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여한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여한을 그저 부질없는 후회로만 그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6·25의 도발은 어제의 사실일 뿐만 아니라 오늘의 시국이며 내일의 현재일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7·4성명을 발표할 그 당시에 이미 남침용 땅굴을 파 내려오고 있었던 북괴는 그후 3년 사이에만 해도 93회의 대남 도발을 자행하면서 1백69명의 공비를 남파시켰다. 휴전선 일대에서는 대남 비방선전이 재개되고 이른바「남조선 혁명」을 공공연히 선동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장된 평화공세를 가열시켜 무력남침을 위한 국제여건을 조성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 바다 건너 미국 정계 일각에는 고립주의 경향이 소수 의견으로나마 또 대두되고 있다. 모든 조짐이 또 하나의 방심과 의타심을 허용하기에는 너무나도「그때 그날」의 전야를 되돌아보게 하고, 어제의 월남을 상기하게 한다.

<민족공동체의 생명력>
여기서 우리는 강인한 선인을 조상으로 가진 현명한 후손임을 자부할 수 있어야만 하겠다.
선인들의「살아온 힘」을 되돌아보고, 「살아야 할 힘」을 길러야만 하겠다.
「살아야 할 힘」은 곧 공동체의 생명력을 키우는 것이며 그것은 예나 이제나「비아」의 도전에 대한「아」의 보전과 관철에 있다.
대외적인 자립과 대내적인 통합을 지향해 온 우리 고유의 주체적 민족사관을 완성시켜 나가는 일이다.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인 위치와 대국「에고이즘」의 난무를 두고 볼 때 이제야말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정신을 가다듬어 자위의 힘을 기르는 것만이 나를 살리고「우리」와 나라를 살리는 첩경이라 믿어진다. 부질없는 부정도, 백해무익한 초조감도, 철없는 도피주의도, 안일한 사대주의도 재난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어차피 이 조그마한 땅덩이나마 여기서 태어났고, 살아야하고, 묻힐 수밖에 없으며 지켜나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공동의 운명이며, 우리는 그것을 사랑해야 한다. 스물여섯돌을 맞는 6·25날 아침에 떠오르는 감회의 일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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