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회담 「토의기록」합의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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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생사회담은 합의문서작성이 난항해 또 한차례 협상을 벌여야했다.
실질협상은 사실상 9일 밤 모두 타결돼 10일 상오엔 합의문서를 교환하고 발표하는 회담종료행사만 치르도록 돼있었다.
그러나 10일 상오 외무부회의실에 양측이 가지고 나온 문서는 거리가 컸다. 이래서 세 차례 협상, 두 차례 정회, 그리고 일본 농림·통상성차관의 최 총리방문 등 하오10시 넘어까지의 진통이 이루어졌다. 물량총량이나 규제범위에 관한 전날의 합의가 깨진 것은 아니었다. ①4월부터 올해 12월말까지 생사·견연사의 수입규제량을 3만2천6백짝으로 하고 ②내년1월부터 3월말까지도 금년 「베이스」를 유지하며 ③견직물도 규제하되 작년수준으로 한국측이 자율 규제한다는 게 합의사항.
문제는 일본측이 ②항의 양해사항은 명화문를 할 수 없다고 들고 나온 것.
○…일측은 본국정부로부터 문안작성에 양보 말라는 강경 훈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하마다」 농림성차관과 「와다누끼」 통산성차관도 낮12시40분 출발을 하오6시로 늦추고 최각규 장관과 장예준 장관을 방문해 문안에 관한 한국 측 양보를 요구한 후 다시 최규하 국무총리를 비공식적으로 찾아가 일본입장을 설명.
한국측은 일단 일측 의견을 반영시키는 쪽으로 의견조정. 상오에 이어 하오1시 다시 모인 양측실무회담 대표는 거른 점심을 중앙청 구내식당에서 시킨 「샌드위치」로 때우면서 협상을 재개. 하오 5시쯤 일단 마무리 지었으나 또 한차례 정회에 들어갔고 윤하정 외무차관과 신정섭 수석대표는 삼청동 총리공관으로가 대충 합의된 결과를 보고, 재가를 받았다.
○…합의문서에서 생사·견연사 규제의 합의물량을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만으로 끊음으로써 양쪽은 각기 다른 국내용 해석을 할 수 있게됐다.
한국측은 지난1월부터3월말까지의 대일생사류수출량이 7천4백짝이므로 4∼12월의 합의량 3만2천6백 짝을 합치면 1∼12월의 연간물량은 4만짝으로 확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측 설명은 다르다. 1∼3월의 수입량이 3천짝이라고 계산한다. 한국측의 「7천4백짝」은 선적량인 반면 일측의 「3천짝」은 도착량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
따라서 일본측 계산으론 1∼12월의 물량이 3만5천6백짝에 불과하며 이렇게되면 「연간 3만6천짝 이내」수입이란 일본측 주장은 관철이 되는 셈이다.
한편 합의문서에 반영시키느냐의 문제로 난항했던 내년1∼3월의 물량에 관한 양해사항은 편법이 이용됐다.
4∼12월간 3만2천6백짝으로 합의하면서 「월3천5백55짝」이라는 숫자를 삽입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3만2천6백짝을 월간량으로 환산하면 3천6백22짝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월3천5백55짝」을 넣은 것은 내년 3월까지도 이 같은 「베이스」로 유지, 금년 4월부터 내년3월말까지의 1년 동안 총4만2천6백60짝은 되도록 양해했다는 것을 이 같은 숫자로 둔갑시킨 것.
일측의 양보라고 한 대표가 설명한다.
○…합의문서 작성에서 일측 입장을 받아들인 한국측은 문서형식에서도 양보. 당초 합의각서나 합의의정서로 하려던 우리측 생각과 달리 합의의사록으로 후퇴했다가 결국은「토의기록」으로 격하됐다.
일본대표단은 만약 합의의정서나 합의각서를 교환할 경우 의회비준을 거쳐야하는 번거로운 국내절차가 뒤따르므로 가볍게 지나가자고 요청했다는 것. 실질협상에서 강경했던 한국측은 합의결과작성에서는 후퇴, 「발표문안」대로라면 대국민용 성과에서는 「득」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한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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