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담 파리' 이달고 … 두 살 때 이민, 스페인 서민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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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현지시간) 파리의 첫 여성 시장에 당선된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54). 뒤쪽에 같은 당 소속 현 파리시장 들라노에가 보인다. [파리 로이터=뉴스1]

“파리의 첫 여성 시장이 어떤 도전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3·30 프랑스 지방선거 결선투표에서 파리시장으로 당선된 사회당의 안 이달고(54)가 밝힌 소감이다. 그는 23일 1차 투표에서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의 나탈리 코시위스코모리제(40) 후보에게 1%포인트 차로 뒤졌으나 녹색당과의 연대를 통해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달고는 파리에서 새 얼굴은 아니다. 2001년부터 첫 여성 부시장으로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과 함께 10여 년간 시정을 책임졌다. 명목상으로만 보면 이번 선거에서 첫 여성 부시장에서 첫 여성 시장이 됐으니 ‘부(副)’자만 뗀 격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차지하는 파리의 위상을 감안하면 정치적 함의가 남다르다. 660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인구 중 파리 인구는 250만 명이 채 안 되지만 프랑스는 흔히 파리와 파리 외 지역으로 나뉠 만큼 수도 파리의 위상은 거의 절대적이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파리 시장으로 재임하다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들라노에 현 시장도 2012년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이었다. 파리 시장이 곧 대선 주자의 반열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어쩌면 그래서 지금까지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달고 당선인이 ‘도전’이란 표현을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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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고 당선인은 전형적인 ‘파리 시민’이라고 보긴 어렵다. 가난한 스페인 이민자 출신이다. 농민이자 사회주의자였던 할아버지가 스페인 내전 기간 중 프랑코군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도피한 게 1930년대였다. 결국 스페인으로 되돌아가 투옥됐다. 할아버지가 정치적 이유로 프랑스로 향했다면 아버지는 경제적 이유로 프랑스를 택했다. 이달고가 두 살 때인 1956년이었다. 이달고 당선인은 14세 때 프랑스 국적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달고 당선인이 즐겨 인용하는, “파리 시민은 파리에서 태어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파리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이라야 한다”는 한 작가의 말대로라면 그는 파리 시민이다. 84년부터 9년간 근로감독관으로 일한 것을 포함해 13년간 노동 분야 일을 했다.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94년이다. 사회당에 입당해 리오넬 조스팽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 자문역으로 일했다. 당시 간여했던 게 주 35시간 노동제였다. 이후 2001년 지방선거에 도전했고 파리 부시장이 됐다.

 그는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출범하면서 입각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거절하고 부시장으로 남았다. 그것이 행운이었다. 들라노에 시장이 3선 도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를 두고 “영감을 주기보단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일부 동료는 외유내강형이란 의미로 “벨벳 장갑을 낀 강철 주먹”(영국 인디펜던트)이란 비유를 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당인 사회당은 말 그대로 참패를 했다. 올랑드 대통령에게 유일한 위로가 이달고의 당선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150여 곳의 지자체장을 잃었는데 UMP가 그중 140여 곳을 가져갔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도 10곳 넘게 차지했다. 94년 4곳 승리가 역대 최고 성적이었던 걸 감안하면 약진이다. 경질설이 도는 장마르크 에로 총리는 “이번 선거는 정부엔 명백한 패배다.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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