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입시제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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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여당주변에선 고교입시의 부활을 비롯한 교육제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개선책이 논의되고 있다한다.
최근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부각된 대입재수생 문제를 계기로 정부·여당이 새삼 교육제도 전반에 걸친 문젯점들을 추출, 그 장기적인 정착방안과 아울러 운영란에 허덕이는 사립 중·고교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구상중이라는 보도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이른바 학군제 고교추첨배정제도가 실시된 후 현저해진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사학의 재정난이 교육계의 난제로 인식되어 왔으며, 최근 급격하게 대두된 재수생문제와 더불어 더 이상 천연할 수 없는 초미의 과제로 절감되고 있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미 문교부가 밝힌바와 같이 9년제 의무교육의 「비전」을 가진 초등 및 초기중등교육에 관해서는 지엽적인 행정운영상의 문제를 제외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이에 비해 고교로부터 시작되는 준고등교육, 또는 고등교육의 문제는 날이 갈수록 애로가 속출, 불안정한 조변석개가 거듭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예로 찬·부 양론이 엇갈린 가운데 이렇다 할 재정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한채 시행된 고교추첨 진학제도는 그동안 고교입시의 과열경쟁과 변두리학교들의 격차를 어느 정도 해소하는데는 약간의 성과가 있었으나, 그와 함께 학습지진아의 양산, 평균학력의 저하, 학교운영의 자율성 상실, 사학의 운영난 등 보다 큰 문제들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고교생의 전국평균성적이 45·1점이란, 심한 학력저하 현상을 면치 못한다든가 전국사학재단의 64%인 4백44개 법인이 법정 전입금의 부담 능력조차 없다는 한보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사실상 고교추점배점제의 전제조건인 학교평준화도 새 제도 실시 후 4년째인 오늘날까지 실현될 가망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으며, 고교의 「평준화」란 원리상으로도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학교마다 상이한 전통과 시설, 그리고 교원의 질이 현저히 다를 뿐 아니라 학생의 자질이나 성취동기 등이 도저히 같을 수 없는 상황하에서 그러한 목표설정 자체가 고등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억지였다고 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고등교육은 최소한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기준은 필요할지언정 본질상 평준화를 목표로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어불성설인 「고교평준화」 운운 때문에 지난3년 동안 우리고교교육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고, 사학은 학사경영·재정 등 전반에 걸쳐 더욱 곤란한 처지에 몰렸다. 교원인건비의 절반과 시설비와 거의 전액을 국고에서 보조받는 공립교와는 달리 사학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빼앗긴 채 국고보조 없이 공립과 동일한 공납금으로 운영해야 했던 것 그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이제 그 방안이 어떤 것이든 고교추첨배정 진학제의 모순이 낳은 여러 문제들의 해결에 정부·여당이 발벗고 나서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조속히 공청회 등에 붙여 중지를 모으되 무엇보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면학분위기를 조성해서 학력향상을 기할 수 있고 아울러 사학의 권위와 교육의 자율성이 확보되는 제도가 이 기회에 마련된다면 만각이라도 이 이상 더 바랄 것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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