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찾아 에티오피아 간 천안함 유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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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참전용사 회관 옆에 마련된 추모비 앞에서 윤청자씨(가운데)가 6·25 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노병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천안함 유족인 윤씨는 “북한군에게 소중한 걸 잃은 분들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윤청자씨]

2011년 4월 천안함 폭침 1년 후 서해를 지키는 해군 2함대의 초계함 9척에는 K-6 기관총이 2정씩 장착됐다. 천안함 사태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기관총의 몸체에는 ‘3·26 기관총’이라고 음각으로 새겨넣었다.

 3·26 기관총은 이례적으로 민간인이 기증해 장착된 군 무기다. 기증자는 충남 부여에서 농사를 짓는 윤청자(71)씨. 천안함 폭침으로 아들 민평기 상사를 잃은 윤씨는 해군을 찾아 국가보상금과 국민성금을 합친 1억898만8000원을 모두 내놓았다. 그리고 “서해를 지키는 장병들을 위해 좋은 무기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시는 나처럼 북한군에게 자식을 잃는 부모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며. 2011년 4월 장착식에 참석한 윤씨가 기관총을 죽은 아들 대하듯 어루만지며 오열하던 모습은 많은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날 이후 바깥 걸음을 거의 하지 않던 윤씨가 최근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 25일 통화에서 윤씨는 “6·25전쟁 때 참전했던 노병들을 뵙고 왔다”고 전했다.

 윤씨가 에티오피아까지 날아간 이유는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생활고에 충격을 받아서다. 에티오피아는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00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 그런 에티오피아에서도 참전용사들은 최하층의 삶을 연명하고 있다. 1974년 사회주의 세력의 쿠데타 이후 집과 땅을 몰수당했기 때문이다. 황실근위대 출신인데다가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 편에서 싸웠다는 이유에서다.

 방송을 본 윤씨는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데지만 일단 가겠다”며 에티오피아로 떠나기로 했다. 윤씨의 큰아들 민광기(44)씨는 “고령의 노인이 가기는 위험한 곳”이라며 한사코 말렸지만, 윤씨는 “북한군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은 그들의 마음을 저곳에서 누가 알아주겠냐”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아들 민씨는 수소문 끝에 마침 후원금을 전달하러 간다는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 의뢰해 어머니 윤씨를 동행시킬 수 있었다.

 일흔 고령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직항이 없어 두바이에서 갈아타는 등 비행 시간만 꼬박 15시간이 걸렸다. 윤씨는 에티오피아에서 5박6일 동안 머물며 참전용사들을 만나 식사를 대접하고 전사자 묘역을 참배했다.

 “나도 6·25 때 피난을 많이 다녔어요. 얼마나 힘들게 고생했는지 몰라. ‘그때 도와주셔서 우리 국민과 제가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정말 고마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 밥 한 끼라도 대접하게 돼서 얼마나 뿌듯한지….”

 천안함 4주기를 맞아 윤씨는 “우리 아들이 하늘에서도 외롭지 않게 잊지 않아주시는 국민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때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나 어렵게 산다. 국민들께서 매년 천안함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큼 그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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