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철선생 영전에 ―김갑수씨<전대법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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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람은 한번 가야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요, 선생이 천수를 다하고 가신줄을 모르는바도 아닙니다.
슬하에 가득히 훌륭한 자녀를 두고 계신줄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돌연한 부음을 듣게 되니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선생이 남기신 족적이 너무 컸던 까닭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나라가 어려운 때 태어나신 선생께서 그 웅지를 뜻대로 펴지 못하셨으리라고는 생각되오나 그런대로 해방과 더불어 실국의 한을 풀으실 수 있었고 건국 이후에는 사법요원으로서 건국에 이바지하신 공로 또한 컸다고 생각됩니다.
대법관·법무부장관·사정위원위원회장·중앙선거위원회위원장, 선생께서 맡으신 직책은 사법·행정에 걸쳐 다기다양하였고 마지막 봉사의 기회를 대법원장직에서 얻으신 선생께서는 사법의 신장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공성신수의 경지에서 이 세상을 뜨신 것입니다. 선생님자신은 아무 여한 없이 눈을 감으실 수 있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섭섭하고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관개를 덮어야 사람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참말인가 봅니다.
염결지신, 권위에 굴할줄 모르시는 선생, 우리는 소망스러운 법관상을 선생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읍니다.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 때에는 선생은 일보도 양보함이 없으셨고 일단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때에는 서슴 없이 그 주장을 굽힐 수 있는 아량과 용기, 선생은 법관이 갖추어야할 모든 것을 갖추셨던 분입니다.
선생께서 가인선생의 뒤를 이어 대법원장이 되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중앙선거위원장으로서의 선생의 준연한 태도 역시 청사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대구개표중단사건에 있어서 즉각 개표를 지시함으로써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한 것은 선생의 영단의 결과였읍니다.
대법원장으로서 4년, 예하지원은 훌륭한 상사를 모신 긍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동안 선생께서는 사법이 원하는 대법원장으로서 십분 그 능력을 발휘하셨고 사법권은 그 어느때 보다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었읍니다.
4·19의거로 선생께서는 대법원장직을 물러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부정선거에 대법원장이 책임을 져야할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사람은 출퇴가 분명해야한다고 고집, 드디어 퇴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쉬운 일 같으나 대단히 어려운 일인데 선생께서는 미련없이 대법원장직을 내 놓으셨습니다.
선생님세대는 어려운 때 태어난 분들입니다. 자라기도 어려운 때 자랐거니와 장성한 후에도 어려운 고비를 수 없이 넘기셨습니다.
해방이 되어 숨을 돌릴 사이도 없이 6·25가 터졌고 6·25의 악몽에서 헤어나기도 전에 다시 전쟁의 위협입니다.
통일을 보지못하고 명목하신 선생께서는 이것만이 유한이시겠습니다마는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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