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미워도 주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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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주식 시장이 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주식만 한 투자 수단은 없어 보인다. 주식 투자 비중도 늘릴 생각이 있다. 하지만 올해 투자는 지난해보다 보수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저성장 저수익’으로 대변되는 ‘뉴 노멀’에 차차 적응해 가는 중이지만 여전히 수익을 포기할 순 없다.

 2014년 한국 투자자들의 심리가 이렇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이 지난 1월 금융 투자 규모가 2500만원 이상인 25~65세 남녀 500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다. 같은 기간 프랭클린템플턴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와 유럽·미주 지역의 22개국 투자자 1만1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였다.

 # 증시 전망, 한국·글로벌 투자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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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투자자들은 주식 시장을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10명 중 5명 이상이 “떨어지거나 보합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60% 이상 “오를 것”이라고 응답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코스피는 -0.97%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11년 이후 매년 내리막이다. 경험에서 나온 전망이라는 얘기다.

 한국 투자자들만 경험을 토대로 시장을 전망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주식 시장이 25% 이상 오른 미국이 포함된 북미의 경우 10명 중 7명이 상승장을 기대했다. 역시 주식 시장이 좋았던 유럽도 응답자의 64%가 올해 주식 시장이 오를 거라고 봤다. 반대로 신흥국이 많이 포함된 아시아 투자자들은 상승장을 전망하는 응답자가 58%에 그쳤다. 전용배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2010년은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이 선전하고 미국·유럽 같은 선진국은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2011년 이후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며 “최근의 경험이 더 강렬한 기억을 남기기 때문에 신흥국 투자자들이 선진국보다 주식 시장을 부정적으로 내다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주식 시장 성과가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한국 투자자들은 26%만이 “지난해 주식 시장이 올랐다”고 대답했지만 북미의 경우 74%가 “올랐다”고 응답했다. 주식 투자로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손해를 본 과거의 경험이 트라우마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해 조사에서도 나타났던 일이다. 2012년 코스피가 9.4% 올랐음에도 10명 중 7명은 “떨어지거나 보합세였다”고 평가했었다. 하락장에서만 재미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상승장에서도 개인이 소외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유망 자산, 주식 > 비금속 > 부동산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주식만 한 투자 수단이 없다”고 봤다. 올해 가장 유망할 것 같은 자산을 묻는 질문에 주식이 가장 많은 지지(23%)를 받은 것이다. “예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주식이 낫다”는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라고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글로벌 투자자들 역시 주식을 가장 유망한 자산(27%)으로 보고 있었다. 주식에 대한 애호는 지난해 짭짤한 수익을 낸 북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주식을 유망 자산으로 꼽은 만큼 올해 주식 투자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응답자(복수응답)도 많았다. 한국은 자국 주식(43%)과 신흥국 주식(36%)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응답자가 많았고, 글로벌 투자자들도 부동산(36%)에 이어 자국 주식(35%)과 신흥국 주식(23%)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대답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투자자들이 유망할 것 같은 자산 2위로 원유 같은 비금속(21%)을 꼽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근환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 투자전략부서장은 “저성장 시대에 고수익을 내는 자산은 대부분 변동성이 크다”며 “과거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로 고수익을 경험해 기대 수익률이 높은 한국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큰 자산을 유망 자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비금속은 변동성이 크기로 유명한 자산이다. 금 같은 귀금속은 경기 사이클이 긴 편인 데 반해 비금속은 하루 사이에도 가격이 큰 폭으로 움직인다. 노 부서장은 “비금속을 유망하다고 보는 건 이 같은 투자관 때문”이라며 “변동성이 크면 손실 또한 크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대륙 투자자들은 비금속을 유망 자산으로 꼽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한국인의 투자관은 위험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부동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순위를 기록한 것도 눈에 띈다. 다른 나라에선 부동산이 유망 자산 1위나 2위에 이름을 올린 반면 한국 투자자의 유망 자산 리스트에선 3위에 올랐다. 20% 이상의 지지를 받은 1, 2위 자산에 비하면 축 처지는 3위(12%)다. 부동산 시장이 좋아지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의 기대엔 못 미치는 셈이다.

 # 보수적 운용 … MMF·CMA에 돈 몰려

 한국 투자자들은 10명 중 6명이 올해 투자 전략을 “전보다 보수적으로 바꾸겠다”고 응답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도 과반(52%)이 “보수적 투자 전략을 취하겠다”고 응답했지만 한국 투자자들엔 훨씬 못 미친다.

 우리투자증권 반포자산관리센터(MWC) 프라이빗뱅커(PB)인 김진여 부장은 “저성장 저수익으로 대변되는 뉴 노멀 시대에 적응하는 투자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라고 봤다. 목표 수익률을 낮추고 안정적인 자금 운용 전략을 쓰겠다는 투자자들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자금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주식 시장을 금기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본 전문가도 있었다. 노근환 부서장은 “선진국의 경우 연기금의 주식 비중이 60%인 반면 한국은 가장 높다는 국민연금도 아직 20% 수준”이라며 “투자 문화가 성숙했다는 기관이 이 정도인 걸 감안하면 개인 투자자들은 훨씬 보수적인 투자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자산이 많은 선진국 투자자들은 자산 배분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주식 투자 비중을 유지하는 반면 금융 자산이 적은 한국 투자자들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올해 기대 수익률을 묻는 질문에서도 뉴 노멀 시대에 적응한 투자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해 설문에선 10.1%라고 응답했던 투자자들이 올해는 8.49%로 기대 수익률을 낮춘 것이다. 향후 10년의 기대 수익률도 지난해 17.1%에서 올해 13.1%로 낮아졌다.

 한국 투자자들의 기대 수익률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 투자자들과 비교했을 땐 높은 수준이었다. 전용배 대표는 “한국은 경제성장률 3%대에 진입한 만큼 선진국 투자자들과 투자 경향을 비교해야 한다”며 “유럽이나 북미의 경우 연간 기대 수익률과 향후 10년의 기대 수익률 차이가 크지 않은 반면 한국은 여전히 그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뉴 노멀 환경 속에서 목표 수익률이 지나치게 높으면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올인하는 경향이 생긴다”며 “투자 기간을 늘리고 목표 수익률을 낮춰야 합리적인 투자가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정선언 기자

◆뉴 노멀(New Normal)=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과도한 정부 부채 등의 문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경제가 이전과 전혀 다른 체질로 바뀌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의 무함마드 엘 엘리언 최고경영자(CEO)가 2008년 자신의 저서 『새로운 부의 탄생』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이 책에서 “뉴노멀 시대가 향후 3~5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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