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군남하 지연시킨「스미드」특공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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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스미드」장군은 50년7월1일 일본「규우슈」에서 미지상군선봉대 4백6명을 이끌고 오산에 공수돼 7월5일 상오3시쯤 오산북쪽 5km지점인 죽미령(l17고지)에 북괴군 남침저지선을 구축했었다. 「스미드」특공대는 원래 일본「규우슈」주둔 미육군 24사단21연대1대대로 한국전에 파견되면서 당시 대대장이던 「스미그」중령의 이름을 따 「스미드」특공대라고 불렀던 것.
방위선 구축이 채 끝나기도 전 5일상오8시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운 북괴군은 수원을 지나 오산쪽으로 남하했다. 「스미드」특공대는 105m포로「탱크」를 공격했으나 북괴군 T-34 「탱크」대는 끄떡도 하지 않고 「탱크」부대를 뒤따라 북괴보병4사단이 남진하고 있었다.
「스미드」특공대는 6시간동안 죽미령에 포진하면서 「탱크」4대를 깨뜨리고 적42명을 사살, 85명에게 총상을 입혔으나「스미드」대원 1백72명이 희생됐다. 미전사조사단은 후일 「스미드」특공대의 죽미령전과를 평가하면서 『공산군의 대전점령을 최소한 5일간 지연시켰고 「유엔」군의 낙동강전선구축에 크게 공헌했다』고 지적했었다. 「탱트」를 앞세운 북괴군이 「스미드」특공대를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오산을 점령하자 적진속에 갇혔던「스미드」대대는 구사일생으로 안성방면으로 후퇴, 7윌7일 천안에 배치됐다가 계속 방위선을 따라 후퇴하면서 8윌에는 현풍과 창령에서 격전, 후속지원군이 낙동강방위선을 구축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작전을 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이 시작되자「스미드」대대는 10월16일 해주시를 점령했고 11월1일에는 신의주남쪽 30km지 진격했다.
그해 11월「스미드」중령은 본국 전출명령을 받고 귀국했었다.
역전의용사 「스미드」장군은 62년 미2군참모장·5사단부사단장을 거쳐 작년1월 준장으로 예편할 때까지 26년간 현역복무중 미십자훈장·은성무공훈장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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