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窮鼠嚙狸<궁서교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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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27면

쥐도 궁지(窮地)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찍’ 소리라도 내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천적(天敵) 고양이에게 달려든다. 궁서교리(窮鼠嚙狸)라는 말의 유래다. ‘리(狸)’는 동물 삵을 지칭하지만 여기서는 흉물스러운 고양이를 뜻하고 있다. 같은 뜻으로 구급도장(狗急跳墻)이라는 성어도 있다. 개(狗)도 급해지면(急) 담장(牆)을 뛰어넘는다(跳)는 뜻이다. 개나 쥐나 몸이 끊어지면서 목숨까지 마감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경우에 닥치면 아주 사나워진다. 곤수유투(困獸猶鬪), 모든 동물(獸)은 곤경(困)에 빠지면 오히려(猶) 심하게 싸운다(鬪).

같은 뜻의 성어가 폭넓게 쓰이는 이유는 ‘상대를 너무 궁지로 몰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 때문일 게다. 궁구막추(窮寇莫追), 궁지에 몰린(窮) 도둑(寇)은 쫓지(追) 말라(莫)는 얘기다. 이 말의 원전은 손자(孫子)다. 그는 병법(兵法)의 천재답게 “궁지에 몰린 적은 압박하지 말라, 이는 용병의 원칙이다(窮寇勿迫, 此用兵之法也)”라고 했다.

가끔 반대의 경우가 통할 때도 있다. 일부러 궁지에 들어가 적과 싸운다는 말, 바로 배수진(背水陣)이다. 뒤(背)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물(水)을 두고 펼친 진영(陣)이다. 더 물러설 곳이 없으니 어떨까.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그래서 밥 짓는 데 쓸 솥단지를 깨트려 버리고, 도망칠 때 탈 배도 물에 가라앉혀 버린다는 것이다. 성어로 파부침주(破釜沈舟)다.

제갈량(諸葛亮)은 ‘쥐도 궁하면 고양이에게 달려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싸움에 응용했다. 적장을 일곱 번 풀어주고(縱), 일곱 번 붙잡았다(擒)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이 그래서 나왔다. 상대를 궁지에 몰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잡아들이는 계책의 전형이다.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중·일 간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서로를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있다. 중국은 해상 시위를 하고, 일본은 기회를 틈타 무장화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그들은 지금 동아시아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다. ‘욕금고종(欲擒故縱), 상대를 잡고(擒) 싶으면(欲) 일부러(故) 풀어준다(縱)’는 성현의 말씀을 잊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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