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성도지 부다가야(1)|노산 이은상<제자·이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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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불타의 재2성지인「부다가야」를 순례하기 위하여, 먼저「파트나」고을에 이르렀다.
여기서 남쪽으로 91㎞를 가면「나란다」가 있고, 또 13㎞를 더 가면「라지기르」(왕사성)가 있고, 또 그대로 80㎞를 더 가면「부다가야」가 있는데, 그 모두가 불타의 유적지이기 때문에 차례로 순례할 생각에서였다.
「파트나」란 곳은 인도의 북동쪽에 있는 큰 도시다. 인구도 40만에 가깝거니와, 「간지스」강 바른쪽에 위치한 농산물의 집산지요, 또 고대문명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하에 있을 적에, 이른바 동인도회사의 무역으로 유명했던 아편공장이 이곳에 있었고, 그러한 반면, 예로부터「이슬람」관계의 학예 중심지도 이곳이었으므로, 지금도「아라비아」「페르샤」의 어학을 연구한 학도들은 반드시 이곳을 찾는 것이다.
그보다 불교 역사상으로는, 이 고을의 본명이「쿠스마푸라」(구소학보나)였고, 한문으로 적히기는 대궐에 꽃이 많았기 때문에「향화궁성」이라 했으며, 뒤에 이름을 고쳐「마탈리푸트라」(파탁리나)라 했는데, 그것이 오늘의「파트나」(화씨성)인 것이다.
특히 이곳은 저 유명한「아쇼카」왕(아육왕)이 천도했던 수도였고, 또 왕이 불교를 흥왕 시킨 뒤에 이곳에 지었던 계원사라는 큰절에는 승려의 수가 6만명을 넘었었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왕의 즉위 18년 되던 해에, l천명의 불교학자들을 모아, 9개월에 걸쳐, 불타의 교법을 토론 정리한, 제3차 결집을 행한 곳이 바로 이곳 화씨성 계원사였던 것이다.
더우기 그때 결집을 보았던 경·율·논 삼장이 뒤에 석란으로 전하여, 비로소 글자로 기록되어, 지금 전하는 파리어 장경이 된 것인 만큼, 이곳은 불교역사상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이 같은「파트나」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45도 무서운 더위를 무릅쓰고 남으로, 남으로, 길을 달렸다.
「아쇼카」왕의 전기는 북전과 남전이 서로 약간씩의 차이가 나기는 하지마는, 대체로 그의 성품이 광폭했던 것만은 일치하며, 그는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형을 죽였고(북전), 또 즉위한 뒤에도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아우「티시아」(제수)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 99명을 죽였다고 하며, 심지어 대신들과 부녀자들과 무고한 백성들까지 얼마나 죽였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전하는 것이다.(남전)
그러던 왕이 즉위 9년 되던 해, 남인도에 있는 강대한 나라「칼링가」(갈능가국)를 징벌하여, 마침내 승리하기는 했으나, 왕은 그날 밤, 전쟁터를 거닐며, 처참하게도 쓰러져 누워 있는 시체들을 보고, 문득 참회하는 마음이 생겨,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이었다.
뒷날 발표한 왕의 조칙 제13호에『천애희견왕(「아쇼카」왕의 다른 이름) 즉위 8년이 지난 뒤, 왕은「칼링가」국을 정벌했노라. 포로가 15만명, 살육 된 자가 10만명, 그밖에 굶주림과 병으로 죽은 자는 그것의 몇 배인지 몰랐노라.
왕은 이제 불교에 귀의하여, 그것을 보호하고 홍통하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노니, 이는「칼링가」국 정벌에서, 수없이 쓰러진 비참한 죽음들을 뼈아프게 통곡하며 참회하는 때문이니라』라고 적은 귀절이 있는 것을 보면「아쇼카」왕의 불교에 귀의하게된 동기가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왕은 그로부터, 지난날의 포악과는 정반대로, 평화와 자비의 실천자로서, 불교를 흥왕 시킨, 역사상 최고의 공로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영토 안에 무수한 사원을 짓고, 무수한 탑을 세우고, 또 바위벽을 만나면 글을 새기고, 유적지에는 돌기둥을 세워 기념하고, 몸소 예배하면서, 참회하고 공양하기를 믿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크고 작은 범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참회할 수 있는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모른다. 한문의 참(참)자는 본시 범어「싸마야티」(참마)를 번역한 글자여니와, 그것은 모든 죄과를 고백하고 뉘우침을 뜻하는 글자다.
『아무런 죄악이라도 그것을 참회함으로써 악을 제거하면 기쁨과 복덕이 되느니라』한 봉엄경의 귀절을 비롯하여, 어떤 불경에서든지 참회를 가장 귀중하게 다루고 있음을 보거니와, 나는「아쇼카」왕의 일생 행적을 통해서, 전반생은 악마와 같은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로되, 후반생은 진정한 참회로 부처와 같은 자비의 제왕이 된 것임을 아울러 헤아리면서, 뜨거운 햇볕아래 용광로 속을 달리는 것 같은 인도의 들판 길을 누비며 갔다.
남국의 들만 길
끝없이 가는 길
뜨거운 햇볕 아래
사람 하나 안 뵈는 길
야자수 늘어선 길로
혼자 걸어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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