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이슈] 직장인 '동물 가족'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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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애완동물을 기르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 도시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고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애완동물을 기르는 데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지나치면 직장생활에 부담도 된다.

현대자동차 애견동호회장 박인로(35)씨는 "호기심에 애완동물을 기르다 힘들어 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며 "먹이를 조절하고 방역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등 일이 적잖으므로 동물 기르는 것을 쉽게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내사랑 애완동물=KB테크놀로지 김수용(29) 연구원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달팽이를 관찰하느라 저녁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김씨 부부가 수조에 손톱만한 어린 달팽이 10여 마리를 넣은 지 6개월. 처음엔 까만점으로 보였던 달팽이가 엄지손가락만큼 자랐다. 상추잎 등 부드러운 야채를 먹이로 주고 수조 안의 모래에 물을 축축하게 유지해준다.

김 연구원은 "달팽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새 기술의 아이디어를 끝없이 짜내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

금융솔루션업체인 ㈜누리솔루션의 김경수(29)대리는 지난해 말부터 디지털 카메라로 고양이를 찍는데 푹 빠져 있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김대리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김대리가 키우는 고양이는 두 마리. 페르시안 친칠라와 한국 토종 고양이다.

김대리는 "고양이는 개와 달리 밥을 한꺼번에 많이 줘도 알아서 자기 먹을 만큼만 먹는다"며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키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월간 디자인 송주영(30)기자는 5년 전 중국 유학시절부터 희귀동물인 터키 앙고라를 키우기 시작했다. 터키 앙고라는 한 눈은 청색이고 한 눈은 녹색인 고양이와 유사한 동물이다.'없는 게 없다'는 중국 풍물시장에서 샀다. 이름을 '뿌씽'(不行:아무것도 안돼)으로 지었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송기자는 "중국 기숙사에서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애완동물은 한번 정을 붙이면 주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다.

롯데알미륨 오강석(28)씨는 두달전부터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햄스터인 '천복이'와 '만복이'가 오씨를 반기기 때문이다. '집에 복 많이 들어오라'는 뜻에서 오씨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줬다.

촌스런 이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맘에 든다고 한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코를 들이댈 때마다 참 귀엽다는 게 오씨의 자랑이다.

그러나 오씨는 "쳇바퀴를 돌리는 모습을 볼 때 가끔씩 지루하게 반복되는 직장인의 생활을 보는 것 같다"며 안쓰러워했다.

㈜사름에 근무하는 김태호(32)씨는 2년 전부터 얍스터라는 민물 가재 3마리를 키우고 있다. 랍스터로 알려져 있는 바다가재와는 달리 민물 가재는 관상용으로 키우는 색다른 애완동물이다. 가재를 키운 것이 인연이 되어 직장까지 랍스터를 수출입하는 현재 회사로 옮겼다.

24시간 가재와 사는 셈이다. 김씨가 민물 가재를 선택한 것은 조금 더 냉정하게 애완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강아지 같은 경우엔 오랜 세월 같이 지내다 죽으면 허탈감이 크기 때문이다. 김씨는 "민물 가재는 강아지처럼 살을 비비며 키우는 동물이 아니어서 죽더라도 슬픔이 덜하다"고 답했다.

◆기르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이화여대병원 유미경(25)간호사는 재작년 토끼 한마리를 구입했다. 4백g의 자그마한 것이어서 키우는 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료비, 예방주사, 건강검진 등 매달 1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토끼와 함께 보내줄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것. 저녁 근무가 있는 날에는 빈 집에 토끼 혼자만 놓아두어야 했다. 토끼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집에 있는 종이를 갉아먹어 수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유 간호사는 최근 토끼를 부모가 사는 대전 집에 맡겼다.

무역회사인 정우실업의 이원영 팀장(31)은 지난 7년 동안 거북이를 애지중지 키웠다.

다른 애완동물처럼 품에 안겨 재롱을 떨지 못해도 물에서 씩씩하게 헤엄치고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에 반했다.

그러나 2년 전 아들이 태어난 뒤 사정이 달라졌다. 직장생활과 아이 양육을 동시에 해야 했다. 아들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거북이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

가끔 아들이 거실 한 끝에 놔둔 수조에 빠질 뻔한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어린 아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이팀장은 고민 끝에 지난달 거북이를 다른 집에 맡기게 됐다.

이팀장은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을 병행하면서 애완동물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며 "애완동물을 키울 때는 즐거움을 바라기 전에 책임감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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