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을 요구하는 수많은 순간에-양혜숙<이대교수·독문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 인간의 생애는 판단을 해야할 결정적 순간의 수많은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그러한 순간들을 통해야만 인간은 비로소 성숙된다고 하겠다. 그러니 판단에서 결정에 이르기까지 연간은 많은 방황과 고민의 체험을 맛보는 것이며 이러한 고민이 없는 결정이란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렵게 이루어진 결정일수록 인간에게 부여하는 의미는 큰 것이며 이러한 결정은 나아가서는 한 인간의 의식세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며 또한 그 생애의 가치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이 한 인간의 생애를 엮고 있듯이 한 민족에게도 끊임없이 판단과 결정의 순간은 강요되고 반복되는 것이다.
또 이러한 결정적 순간의 연결 속에서 우리는 한민족의 역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이 한 결정 속에서 우리는 그 민족의 특성과 그들의 필연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론·늘」 「크메르」정부의 붕괴, 미국의 월남포기선언, 장개석 총통의 서거, 김일성의 중공방문-이러한 기사를 읽는 우리의 마음은 착잡함을 금할길 없다. 더구나 돈보따리를 싸들고 밀항지로 몰려들거나 금은과 돈을 몰래 싣고 달아나다 발각되는 월남의 국민들을 볼 때 6·25를 겪은지 20여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는 아직도 전쟁의 체험이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동시에 내게는 전후 독일작가들이 처했던 상황과 입장이 머리를 스쳐가고 그들의 예에서 우리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독일의 항복으로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연합군과 더불어 망명하였던 작가들은 개가를 부르며 귀국하였고 「나치」탄압 하에 원고를 서랍 속에 감추었던 재독작가들은 다시 어깨를 펴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독일에 남아서 전쟁을 치렀던 재독작가들은 「나치」를 도왔다는 죄책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였으며 반면 망명하였던 작가들은 자기들만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운 것처럼 기세가 등등하였다.
서서히 죄어드는 「나치」정권의 무지와 탄압에 못이겨 망명이나 추방을 당한 작가는 국외에서 조국해방을 위하여 필사적 투쟁을 벌여왔음은 물론, 총과 칼에 대항하여 붓과 혀로 싸워온 것이다.
그러나 망명의 기회와 추방의 계기를 놓친 재독작가들은 생존과 애국의 길을 다만 침묵이냐, 아니면 참여냐 하는 어려운 두 가지의 갈림길에서만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존과 그릇된 명예를 위하여 「나치」에 참여하였던 당시 「지성인」의 비참한 말로를 우리는 전후 너무도 역력히 보았었다. 그러나 무서운 협박과 수많은 위태로운 순간에서도 올바른 판단과 침묵이라는 최후의 행동으로 자기와 나라를 지킨 재독시인들의 비극적 운명에서도 우리는 많은 힘과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어려운 시기에 이민과 도피를 논할 것이 아니라 우선 누구나 한번 어떠한 길이 내가 나답게, 내 민족을 사랑하며, 나를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길인지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결정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