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편성위' 법제화는 민간방송에 대한 자율권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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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의 법안심사소위가 방송사들이 의무적으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이 조항은 KBS 같은 공영방송뿐 아니라 민간방송(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에도 적용된다. 이는 방송의 자율권을 구속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다.

 법에 따르면 편성위는 방송사의 편성규약을 제정해 공표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편성규약은 방송 편성권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회사에 비유하면 경영지침과 비슷하다. 이처럼 이는 핵심적인 부분이어서 당연히 현재는 경영진이 편성규약을 만드는 권한을 지닌다. 이런 권한을 편성위로 넘기고 편성위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도록 하는 건 민간기업에 노사 동수로 경영위원회를 만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민주당은 당초 KBS·MBC 등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추진했다. 하지만 공정성 확보를 위해선 가장 효율적이고 부작용이 적은 방안이 채택돼야 한다. 정권은 공정성 의식이 투철한 인사를 경영진으로 임명하고, 경영진은 노조 등 종사자와 시청자 대표의 합리적인 의견을 수렴하며, 언론과 시민사회는 공정성을 감시하는 삼각체제가 잘 형성되면 공정성은 바로 설 것이다. 이런 순리적인 접근을 놔두고 노사 동수 편성위라는 장치를 만들면 혼란이 우려된다. 이를 무대로 강성노조의 의지, 정치세력을 포함한 외부의 입김, 방송 프로를 둘러싼 사회의 갈등이 마구 엉킬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를 민간방송에까지 확대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민간방송은 민간이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며, 따라서 방송의 지향성도 공영방송과 차이가 있다. 민간방송은 사학(私學)처럼 고유한 설립 취지가 중요하다. 방송 내용에서도 민간방송은 공익성과 함께 상업성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권을 보호해야 민간기업이 생존하듯이 편성권을 보장해야 민간방송도 산다. 방송법 개정안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자유에 어긋나는 것으로 위헌 소지가 크다. 이런 악법이 탄생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