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묘지의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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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좁은 국토를 넓게 활용하자는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정부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설 묘지를 정리하려는 장기 계획을 검토중이라 한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묘지를 효율적으로 정리해 보자는 구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법적인 보완책도 여러 각도로 검토되어 왔으나 번번이 마지막 단계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조상을 섬긴다는 우리 고유의 전통과 인습 때문에 묘지에 관한 한, 법이나 행정 명령으로 이를 일거에 개혁하기란 사실상 지난지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명당을 찾아 훌륭한 유택을 마련함으로써 죽은 조상을 위한다는 명분이 제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해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오늘에 와서는 제주도 만한 땅을 그냥 놀려 둘 만큼 우리의 형편이 여유 있는 것이겠는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인도의 「타지마할」이 현대에 와서 비록 인류 문화의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 노동력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예찬일 뿐 몇 사람의 사자를 위해 바쳐진 엄청난 희생과 낭비를 긍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제아무리 부귀 영화를 누린 사람도 이 같은 거창한 허식까지를 정당화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시골이나 일부 부유층의 의식 속에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이와 비슷한 허식의 잔재가 남아 있음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현행 법령은 묘지 1기의 면적을 20평방m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은 물론, 해마다 급증하는 묘지 수요 때문에 그나마도 땅이 모자랄 지경이어서 묘지 제도의 개선은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묘지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전 국토 면적 중 1%에 가까운 1천 평방km에 달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우리 나라의 평균 사망률 4·5%나 화장 비율 20%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묘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것은 뻔한 이치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묘지 정비 계획은 우선 85년까지 화장 비율을 50%선까지 늘리고 집단 공설 묘지 건설을 늘려 묘지를 규격화, 집단화한다는 방침인 것 같다. 다만 이를 단계적으로 실시, 우선은 제주도 지역부터 시범적으로 4, 5개소의 집단 공설 묘지에 사설 묘를 모두 이장, 수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택 만원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공원 묘지 제도를 발전시켜 토지 절약은 물론 조경 효과도 크게 얻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특히 땅이 좁은 일본은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묘지 개선 작업을 추진해 왔고, 최근에는 「빌딩」식 납골당이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뿌리 깊은 우리의 실정으로는 묘지, 종중산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방 자치 단체 중심으로 공설 묘지를 늘리고 묘지 관계 법령을 고쳐 화장을 권장하고 매장을 제한하는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또 민간의 사설 공원 묘지 설치를 조세 면에서 지원하고 사설 묘지에 대해서는 중과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과도적으로는 가족묘지, 문중산 묘지의 경우 기존 분묘를 집단규격화 할 것을 조건으로 허가해줄 수도 있겠다. 도시 주변에는 화장장·납골당 시설을 늘리고, 외국의 경우와 같이 종교 단체별 사원을 집단 묘지 화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산지 개발의 가장 큰 애로 요인의 하나인 묘지 정비 문제는 국토 활용의 시급성에 비추어 우리 고유의 미풍 양속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러나 단호한 결단을 가지고 과감하게 추진되어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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