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상봉 / 해후 / 조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0면

남북으로 헤어져 서로를 애타게 그리던 가족들이 마침내 만났다. 2010년에 이어 3년여 만에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 북에 두고 온 아들과 딸을 보겠다는 일념에 아픈 몸을 응급차에 싣고 먼 여행을 감수한 90대 할아버지 등 이들의 애달픈 사연이 온 국민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우리 쪽 1차 상봉단은 90세 이상이 20여 명이나 되고 70세 이상이 90%라고 한다. 이번에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도 너무 늦기 전에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상봉이 정례화됐으면 좋겠다.

 만남을 뜻하는 표현으로는 상봉(相逢), 해후(邂逅), 조우(遭遇) 등이 있는데 조금씩 쓰임이 다르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상봉’으로 ‘서로 만남’이란 뜻이며 상우(相遇)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학교 친구를 상봉했다” “맞벌이를 하는 그 친구는 아내와 한 달에 한 번씩 상봉한다”처럼 쓸 수 있는 표현이다.

 ‘해후’는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뜻밖에 다시 만남’이란 뜻이다.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와는 십여 년 뒤 인천에서 해후했다”처럼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쌍둥이가 각각 다른 나라로 입양됐다가 우연히 SNS를 통해 자신과 꼭 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서로 만나게 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런 경우 “그는 이십 년 만에 동생과 극적으로 해후했다”란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조우’는 ‘우연히 맞닥뜨리는 것’이다. “정찰을 나갔던 그의 부대는 적과 조우해 전투를 벌였다” “미성년자 출입 금지 영화를 보러 갔던 그는 극장에서 선생님과 조우했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정찰 나갔다가 적을 만난 것이나 영화 보러 갔다가 선생님과 마주친 것은 모두 기대나 예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다. ‘첫 女대통령 간의 조우, 한-리투아니아 정상회담’. 이것은 어느 기사의 제목이다. 정상회담이라면 일정 등을 매우 면밀하게 계획할 텐데 어떻게 ‘우연한 만남’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때 ‘조우’는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쉽게 ‘첫 女대통령 간의 만남’이라고 쓰면 된다.

김형식 기자

▶ [우리말 바루기]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