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세상탐사] 허구의 예산과 실패한 결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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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호 31면

누구나 잘한 일은 자랑하고 싶고, 잘못한 것은 숨기고 싶기 마련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경제 분야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자랑할 만한 게 별로 없다. 성장률을 2.8%로 끌어올렸다지만 3%에 못 미치는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판에 이걸 실적이라고 내세우기는 민망하다. 유일한 수치 목표로 삼았던 고용률 70%도 목표치에 한참 미달했을 뿐만 아니라 청년 고용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고용의 질은 더 악화했다. 유일하게 뚜렷한 성과를 거둔 경상수지의 연속 흑자도 불황형 흑자 구조의 결과물이어서 대놓고 자랑하기가 멋쩍다.

반면에 숨기고 싶은 것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구멍난 나라살림이다. 정부는 복지 증진과 경기 진작을 위해 세출을 늘리고, 이를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입 확대로 충당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하다. 세금은 예산보다 훨씬 덜 걷혔고, 그 바람에 써야 할 돈도 제대로 다 못 쓴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이러한 지난해 세입·세출 결산 내용을 내놓고 슬그머니 넘어갔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운용 결과는 적당히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부 예산의 수입과 집행 실적이야말로 정부 정책의 핵심적 성적표이자 세금을 낸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야 할 나라 살림살이에 대한 최종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책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문제를 삼는 야당마저 이렇다 할 언급이 없는 것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사실 지난해 새 정부가 대규모 복지 공약의 실천을 다짐하고, 그 재원을 지하경제 양성화로 조달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나라살림에 구멍이 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세입·세출 결산은 그러한 예상을 그대로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우선 지난해 총세입은 292조9000억원으로 당초 예산보다 10조9000억원이나 적다. 세금(국세)이 8조5000억원이나 덜 걷힌 것이 결정적이다. 소득세가 더 걷혔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세와 양도소득세·증권거래세 등의 수입이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법인세 감소는 기업의 영업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고, 양도세와 증권거래세의 감소는 부동산·증권 시장의 침체를 반영한 것이다. 한마디로 경기 상황과 직결된 세금이 확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결국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은 월급쟁이의 세금만 더 거두었을 뿐 경기부진의 한계를 이기지는 못한 셈이다.

세수가 줄어들다 보니 지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난해 세출액은 모두 286조4000억원으로 당초 예산보다 18조1000억원이나 적었다. 기초연금 도입이 무산되면서 복지 지출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세수 감소에 대한 우려가 정부의 손발을 오그라뜨린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지난해 추경예산까지 편성하면서까지 재정을 동원해 경기를 살리겠다던 약속은 빈 말이 됐다. 결국 지난해 재정 운용은 세금을 더 거두지도 못하고, 계획대로 돈을 쓰지도 못한 셈이다. 한마디로 예산 편성 자체가 어설펐고, 재원 조달 방안도 비현실적이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재정 운용의 난맥상이 올해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국세수입을 지난해 예산상 계획보다 8조1000억원, 실제 세입액보다는 16조6000억원이나 늘린 218조5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지하경제 양성화가 본격화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세수를 늘릴 가장 확실한 길은 경제성장뿐이라는 사실은 지난해 결산에서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던가. 올해 경기가 확 살아난다는 보장도 없고, 부동산과 증시가 활황으로 돌아서지도 않았는데 무슨 수로 이만한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비현실적인 세수 추계를 바탕으로 세출예산을 집행한다면 내년 이맘때 당초 예산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세입·세출 결산서를 보게 될 공산이 크다. 부실한 재원 조달 방안을 가지고 아무리 화려한 지출 계획을 세워봐야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다.

부족한 세수를 증세를 통해 메우자는 민주당의 주장은 더욱 무책임하다. 세율을 올려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세수는 늘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세율 인상이 경제활동의 의욕을 꺾고 성장을 둔화시켜 세수를 더욱 줄일 공산이 크다. 정부와 정치권은 재정에 관한 한 이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세수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빚을 내지 않는 한 재정지출도 늘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논의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언제까지 허구적인 예산서와 실패한 결산서를 계속 내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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