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만, 40여 년 찍었다 … 눈물 속 웃음꽃 핀 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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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진가 김녕만이 1993년 전남 화순에서 찍은 마을 장례식 장면. [사진 김녕만]

#1. 선거 벽보 옆에 난 창으로 소 두 마리가 빠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저 벽보 속 후보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사진가 김녕만(65)이 1991년 경남 함양에서 포착한 장면이다. 그는 “속된 말로 개나 소나 다 출마하여,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기에 바쁜 후보자들을 보면 씁쓸하다. 그런데 후보자들 사진 옆에 소 두 마리가 작은 구멍으로 얼굴을 내민다”라고 적었다.

 #2. 신문사 사진기자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판문점을 취재할 때였다. 김녕만은 미끄러운 눈길을 눈여겨봤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 남북한 군인들이 이 미끄러운 길에서는 반사적으로 손을 잡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다렸고 예상은 적중했다.

 김녕만 사진집 『시대의 기억』(사진예술사)은 그가 40여년 간 찍어온 이같은 결정적 장면 271점을 추렸다. 분단·새마을운동·도시개발·민주화 등 우리가 겪은 세월이 담겨 있다. 지난 세월에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눈물 속 웃음을 포착하는 데 있어서 발군이 다. 두 손 들고 복도에 꿇어앉은 코흘리개 녀석들 사진을 보면 꿀밤이라고 먹이고 싶고, 평소엔 얌전하던 우리 어머님들이 자녀들 운동회에서 고무신 벗어던지고 내달리는 모습엔 미소가 피어난다.

 전북 고창서 태어난 그는 동아일보 사진기자로 23년간 일하며 찍은 사진들이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김승곤 평론가는 “세대에 대한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흥미, 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깔려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행운과 조바심”이라고 털어놓는다. “중요한 기록이 누락될까 조바심을 냈다”는 것이다. “나의 기억은 모호할지라도 카메라의 기억은 오차가 없다.” 271점의 사진을 추려낸 그의 말이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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