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기고문] 실낱 희망 걸게 된 표적항암제 … 건보적용 안 돼 가족에게 죄책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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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 그러다보니 아침마다 거실 가득히 들어오는 햇빛조차 고맙고 행복하다. 때론 ‘어머니라는 존재가 집안의 태양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비록 지금은 진행성 유방암이란 구름에 빛을 잃어가는 태양이지만, 내가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있으면 가족에겐 존재만으로도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타지에 살고 있는 두 자식과 통화할 때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또 고생하는 남편 앞에서는 밝게 웃는다. 하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는 미안함과 고통을 삭히며 울기도 한다.

내가 앓고 있는 진행성 유방암은 다른 부위나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를 말한다. 나는 6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치료를 위해 한쪽 가슴을 절제했다. 수술 후 완치된 줄만 알았던 암은 2년이 지난 2010년에 재발했다. 암세포는 임파선 등 온몸 곳곳에 퍼져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살지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진행성 유방암은 완치가 어렵다. 치료는 암세포가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억제하며 생명을 연장하는데 의미를 둔다.

하지만 살고 싶다. 그것은 본능이고, 나의 강한 의지다. 살기 위해 고통스러운 항암화학치료를 여덟 번씩 두차례나 받았다. 이미 항암화학치료는 모두 받은 상황이라 암세포는 내성이 생겨 더 끈질기게 내 생명을 요구한다.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은 많지 않다. 때마침 담당 의사가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데 효과가 있는 약이 재작년 말에 나왔다며 치료를 권했다. 기존 항암제와 다르게 암세포만을 공격하여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구토를 하는 등 힘겨운 부작용도 적다고 한다. 아피니토라는 이름의 표적항암제라고 했다. 한줄기 희망이 보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니 병의 진행이 없는 상태로 생존하는 기간이 기타 다른 호르몬 치료제 보다 2배 이상 늘려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힌 건 비싼 약값 때문이었다. 국내에 들어 온지 1년이 넘어가는데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한 달 약값이 옛날 자식들 한 학기 대학등록금만큼이나 됐다. 가족은 하나 남은 보금자리를 담보로 약값을 마련했다. 나는 가족이 있기에 생명이 있는 한 살아야 한다. 실제로 신약을 6주간 써보니 암수치가 상당히 낮아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고가의 약을 내가 먹을 수 있을까. 가족에게 수백만, 수천만 원의 빚을 남기면서까지 삶을 선택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될까.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살아가는 진행성 유방암 환자와 가족에게는 너무도 먼 공염불일 뿐이다. 약을 쓰더라도 경제적인 부담은 가족에게 죄책감으로 남는다.

진행성 유방암에 대한 신약은 환자 한 사람이 아닌 온 가족에게 희망이다. 부디 정부는 이런 가족의 소망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헤아려 어머니로서, 배우자로서 마지막까지 가정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하루빨리 보험이 적용돼 살아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진행성 유방암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 안겨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노원구에 사는 진행성 유방암 환자 김순자(가명·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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