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3개월 ‘동거’ DJ 땐 대통령 자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3월 1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발 인천행 여객기의 비즈니스석에 앉은 안철수(귀국 한 달 뒤 4·24 보궐선거에서 당선했다)의 손에는 최장집 명예교수의 책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 들려 있었다. 대선 투표일에 출국해 80여 일 만에 귀국하는 그는 비행기에서 그 책을 읽었다. 따라 올라 탄 기자들이 모두 그 모습을 지켜봤다.

두 달 뒤 안 의원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출범시키며 최 교수를 이사장으로 영입했다. “십고초려했다”는 말로 예우를 표시했다. 최 교수가 주창해온 ‘진보적 자유주의’를 정치적 좌표로 삼겠다는 뜻도 밝혔다. ‘유방이 장량을,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은 격’이라고 표현한 언론도 있었다.

석 달 뒤 최 교수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내가 할 역할이 없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내가 잘 모시지 못해 그렇게 됐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정치적 역할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다. 내가 해야 할 정치적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치적 역할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향하는 이념이나 가치의 측면에서 안 의원과 맞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최 교수는 현실 정치의 영역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적은 없다. 그렇다고 상아탑 속 학자로서의 길을 고집하지도 않았다. 그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후원회장 역할을 맡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그를 매개로 한 안 의원과 손 고문의 연대설이 등장하기도 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임명된 게 그가 교수 취임 이후 유일하게 맡았던 공직(그에게는 1971~73년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이다. 그는 월간조선의 보도로 시작된 사상검증 논란에 휘말려 1년 만에 사임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고소 사건으로 이어졌고 2005년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상언 기자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중앙SUNDAY 구독신청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