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기업 개혁 참 어렵다 … 퇴직금 누진 폐지에만 1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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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행정부는 26일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사가 21일 임단협에서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합의함에 따라 안행부 관할 141개 지방 공기업에서 누진제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1999년부터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고 단수제 도입을 유도한 지 무려 15년 만에 거둔 성과다.

 명지대 임승빈(행정학) 교수는 “15년 만에 지방 공기업의 퇴직금 누진제를 100% 폐지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평가할 만한 대목”이라며 “그러나 그만큼 공기업 개혁이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민간 기업들은 앞다퉈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했지만 공기업의 개혁 속도는 느렸다. 억대 연봉자가 많은 공기업들이 누진제를 고집할 경우 가뜩이나 적자에 허덕이는 공기업 경영에 큰 부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누진제를 적용하면 근속연수가 길수록 퇴직금 지급률이 높아진다. 단수제로 바꾸면 근속연수 1년당 1개월치의 평균임금이 퇴직금으로 지급되지만 누진제를 유지하면 예컨대 10년차가 15.5개월치를, 20년차가 33개월치를 퇴직금으로 받게 된다.

 그러나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대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공기업 노조의 반발이 만만찮았다. 정부도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2000년 1월 ‘지방공기업 설립·운영 기준’을 만들면서 누진제를 조기에 폐지하도록 압박했다. 2000년부터 새로 설립된 공기업은 누진제를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2012년에는 지방 공기업 평가 지표를 개정하면서 누진제를 유지하는 공기업엔 경영평가 때 1.2점의 감점을 줬다. 감점 폭은 지난해부터 2.2점으로 커졌고 2015년부터는 3.2점으로 확대된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도시철도공사 노조가 누진제 폐지에 합의한 데 대해 안행부 김상길 공기업과 사무관은 “지난해 서울메트로가 경영평가(가∼마 5개 등급)에서 누진제를 고집한 탓에 등급이 강등되면서 성과급이 크게 줄어든 경험이 상당한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메트로의 지난해 경영평가 등급은 ‘나’에서 ‘다’로 떨어졌다. 누진제를 고집하는 바람에 경영평가에서 감점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안행부 분석이다.

 국가 공공기관은 여전히 퇴직금 누진제 문제가 남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의 총부채 규모는 520조원으로 지방 공기업(약 100조원)의 총부채를 훨씬 웃돈다. 기획재정부가 295개 공공기관 중 공기업(30곳)과 준정부기관(87곳) 등 117곳의 퇴직금 지급방식을 조사했더니 여수광양항만공사·축산물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원 등 2곳이 여전히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는 나머지 178개 기타공공기관의 퇴직금 지급 방식은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기재부 예산편성집행지침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만 준용할 의무가 있지만 기타공공기관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한양대 유재원(행정학) 교수는 “민영화로 가지 않을 경우 공기업 비효율의 일부인 퇴직금 누진제를 포함해 기관장이 책임지고 구조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기재부가 누진제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지대 임 교수는 “차관이나 실·국장이 공기업에 낙하산으로 간 경우도 많은 걸 감안하면 개별 부처에 공기업 개혁을 맡기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며 “정부혁신위원회처럼 여러 부처를 아우르는 집중적인 공기업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세정·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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