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처럼 촉촉한 판결문이 가슴 울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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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삼승 고문변호사는 수필 같은 판결문을 강조하는 한편, 문학작품 같은 판결문을 쓰는 데 따르는 위험부담도 거론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의 공격을 받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사진 서울중앙지방법원]

“수필과 같은 판결문을 쓰세요.”

 22일 서울중앙지법(법원장 이성호) 주최로 열린 ‘소통 콘퍼런스 2014’에서 법무법인 화우 양삼승(67) 고문변호사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100여 명의 법관에게 이같이 말했다. 양 변호사는 “법관은 국민이 내 맘을 몰라준다고 가슴앓이만 할 게 아니라 진심을 모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급심 법관을 향해 쓰는 판결, 가슴이 아닌 머리로만 쓰는 판결, 무미건조한 판결문이 국민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며 “사법부의 생각을 국민에게 확실히 알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수필과 같은 판결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변호사는 법원 판결의 종류를 2가지로 분류했다. 법률논리와 사실 확인만 철저히 하면 되는 판결과 사회적·이념적·헌법적 쟁점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판결이다. 그는 “1%에 불과하겠지만 치열하게 다투는 사건에서 법관이 자신의 철학과 역사의식을 담아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며 “잘 쓴 수필, 칼럼과 같은 판결로 국민에게 영감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대법원 판결에서 어느 대법관은 ‘개인의 권리’에 대해 ‘주먹을 마음껏 휘두르되 다른 사람의 코앞에서 딱 멈춰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며 “국민이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게 깊은 사색의 결과를 담은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또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판단 기준에 대해 “보면 안다”고 답한 미국의 전 연방대법관 포터 스튜어트의 사례를 들었다.

 양 변호사는 “최근 법원과 관련한 일부 영화가 실제 판결과 다르지만 국민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은 판결문보다 더 가슴에 와 닿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가슴으로 쓰는 수필과 같은 촉촉한 판결문이 국민의 오해를 불식시킬 최선의 소통수단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 변호사는 1974년부터 99년까지 25년간 법관으로 재직한 뒤 퇴직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대표 변호사를 거쳐 현재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재직 당시 법원 내에서 판결문을 잘 쓰기로 유명했다. 『법과 정의를 향한 여정』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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