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모녀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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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토피가 정말 무섭다. 나중에 올 후유증이 너무 겁난다. 아이가 얼마나 힘들어 할까. 미칠 것 같다. 연고를 잘못 사용해 부작용이 생긴 것 같다. 미안해,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부산에서 여덟 살 난 딸의 아토피 피부질환을 고치지 못해 자책하던 30대 주부가 이 같은 유서를 남긴 채 딸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일 오후 5시50분쯤 부산시 사상구의 단독주택에서 초등생 K양이 거실에 누운 채, 어머니 C씨(33)는 방에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할머니(57)가 발견했다. 경찰은 딸이 목 졸려 질식사했다는 검안의 소견에 따라 어머니가 딸을 숨지게 한 뒤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과 경찰에 따르면 B양은 세 살 무렵 아토피 증상이 나타났다. 5년간 전국의 이름난 아토피 전문 병원을 찾아다니며 치료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온몸과 얼굴에까지 아토피가 번져 큰 고통을 겪었다. 가려움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A씨는 수개월간 아토피 치료용 연고(스테로이드 연고)를 딸에게 발라줬다. 그러나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어머니 C씨는 유서에서 “연고를 너무 많이 사용해 딸이 쿠싱증후군에 걸린 것 같다”며 “나의 무지함 때문에 아이가 더 아픈 것 같다”고 자책했다. 얼굴이 붓거나 면역력이 약화되는 쿠싱증후군은 스테로이드 연고를 지나치게 사용했을 때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중학생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10년간 아토피를 앓았다는 경남 창원의 주부 Y씨(45)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 온 몸에 진물이 흘러 괴로워하는데 남들은 가까이 가기조차 꺼리는 것을 보며 나 자신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가들은 아토피 치료에 대한 오해가 비극을 불러왔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창원파티마병원 마상혁 소아청소년과장은 “스테로이드 연고는 아토피 치료에 꼭 필요한 약”이라며 “의사 처방을 잘 따르면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장기간 아토피를 치료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보고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판단하는 일이 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일 수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국내에서는 한 해 100만여 명의 아토피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대한아토피협회는 가벼운 증상을 가진 환자까지 포함해 환자수를 500만 명으로 추산한다. 건강보험심사공단이 집계한 아토피 진료비는 연간 3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아토피에 좋다는 한약을 복용하는 것처럼 보험에 잡히지 않는 부분까지 포함하면 실제 아토피 치료비용은 한 해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의료계에서는 보고 있다.

부산=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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